외부칼럼 특별기고

[fn논단] 촛불집회와 민주주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05 17:00

수정 2016.12.05 22:34

[fn논단] 촛불집회와 민주주의

최인호는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신기록을 세운 작가이다. 그의 신기록은 단지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최연소 신문연재 소설가라는 신기록을 가지기도 하였고 자신의 책 표지에 자신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실리기도 한 최초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1970년대 청년문화운동의 기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그의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톡톡 튀는 발랄한 상상력이라든가 젊은 문장 감각들을 보면 당시의 어른들의 엄숙주의와는 분명히 비교되는 청년들의 감수성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념적으로는 그렇게 진보적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리 이상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시의 최인호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나 보다.
왜냐 하면 그는 자신의 이념과 관련해 터놓고 말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무서운 복수'는 최인호가 자신의 이념을 슬며시 보여준 흔치 않은 작품 중 하나다. 여기서 복수란 보복의 의미가 아니라 다수를 의미한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반정부 시위를 하는 '복수'에 대한 두려움이 정작 그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교수가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을 강의하는 중에 시위학생들이 쳐들어와 교수에게 시위 동참을 요구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이 깊다. 교수는 결국 휴업을 하게 되고 서술자 '나'에게 칠판의 판서한 부분을 지워달라고 하는데 '나'는 판서내용을 지워나가다가 깜짝 놀라게 된다. '이상국가'의 받침을 지우고 나자 '이사구가'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사구가'가 '이 사꾸라'를 연상시켰던 것인데 '사꾸라'라는 말이 친일파, 혹은 민족반역자의 다른 말이었기 때문에 혹시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로 하여금 주위를 돌아보게 하였던 것이다.

이 '사꾸라'에 대한 강박관념은 이 작품의 특이한 어법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나'가 학생운동의 약점을 은밀하게 드러내면서도 스스로를 학생운동의 동조자로 묘사하는 듯한 어법이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그들이 학생회장 선거를 위해 부패한 기성 정치인처럼 막대한 돈을 써댄다고 은밀히 비아냥거리면서도 시위 학생들을 우리라 칭하면서 마치 '나'가 그들과 한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자신이 보수주의자라고 하면 되는 것인데 마치 학생운동의 대의에 동참한 듯이 말하면서도 엇박자를 내려 하는 이 최인호의 무의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게 그의 잘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당시 민주화 방식의 시대적 한계의 다른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독재와 선명한 이분법을 형성하지 않으면 독재에 대한 저항세력을 모을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 편이 아니면 결국은 독재편이고 친일세력이고 민족반역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만든 시대적 슬픔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6차에 걸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나 탄핵과는 별개로 참으로 소중한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이라 할 만하다. 우리 편이 아니라고 해서 적개심을 갖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우리의 의사만을 보여주는 이 행사는 전 세계 앞에서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당당한 자랑거리가 아니겠는가.

김진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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