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伊 국민투표 부결… ‘이탈렉시트’ ‘은행 줄도산’ 공포감

이병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05 17:34

수정 2016.12.05 20:19

부결 의미는 유럽연합 회의론자의 승리, 유로가치 작년 3월 뒤 최저..렌치 총리, 패배 인정 사퇴
향후 전망은 부실대출, 유로존 1/3 차지..민간 구제금융도 어려워져
伊 은행 최대 8곳 도산 위기
이탈리아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예상보다 압도적인 차이다. 가결을 위해 정치 생명을 걸었던 마테오 렌치 총리는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탈리아는 조기 총선 국면으로 접어들며 정치적 불확실성에 빠져들게 됐다.

렌치 총리가 추진하던 민간 구제 금융안도 '올스톱'하면서 이탈리아 은행들은 줄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유럽연합(EU) 결속력과 유로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유로화 가치도 지난해 3월 중순 이후 최저치까지 급락했다.


4일(현지시간) AFP통신, CNN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전역에서 치러진 개헌 국민투표가 개표 결과 유권자의 59% 이상이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투표율은 약 70%였다.

렌치 총리는 투표 종료 직후 현지 언론의 출구조사 결과가 일제히 부결로 발표되자 이날 자정께 총리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총리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배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져야한다. 정부에서의 내 경력은 여기까지"라며 사퇴를 선언했다.

■'이탈렉시트' 현실화하나

이번 개헌안에는 이탈리아 상.하 양원의 구조와 권한을 분산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탈리아는 양원제 국가로는 거의 유일하게 상원과 하원이 입법 거부권과 정부 불신임권 등 동등한 권한을 지녔다. 이로 인해 양원이 정부의 입법안을 주고받으며 법안 처리를 지연하거나 차단해온 탓에 정치 불안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 왔다.

이에 렌치 총리는 정치체계 간소화를 위해 상원의원을 315명에서 100명으로 줄이고, 영토에 관한 법률 이외에 모든 법안은 하원 통과만 거쳐도 되도록 해 권한을 조정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발의했다. 또 지방자치단체.광역단체와 중앙정부 간 권한을 조정해 중앙정부를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여당 일부를 포함한 비판론자들은 상원의 축소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손상시켜 민주주의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또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 등도 이번 국민투표를 현 정권에 대한 심판기회로 삼아 '반대 캠페인'을 벌여왔다. 투표 부결에 앞장선 베페 그릴로 오성운동 대표는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블로그에 "민주주의가 승자다"라고 밝혔다.

렌치 총리의 사퇴로 이탈리아 정치권은 2018년으로 예정됐던 총선을 내년 상반기로 앞당겨 실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CNN은 이번 투표 결과로 '반대 켐페인'의 선봉에 섰던 유럽연합 회의론자(euroskeptism)들과 민족주의 정당이 승리했다고 분석했다. 다음 총선에서 제1야당인 오성운동과 반(反)이민.반 유럽연합을 전면에 내건 극우정당인 북부리그(NL)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이어 CNN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그릴로 대표가 차기 총선에서 권력을 잡게 된다면 유로를 폐지하고 이탈리아의 리라로 돌아가려 할 것"이라며 "심지어는 영국에 이어 EU를 탈퇴하기 위한 '이탈렉시트(Italexit)'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은행 초비상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이탈리아의 부실은행들은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렌치 총리의 사퇴로 구조조정이 중단되며 이탈리아 은행 최대 8곳이 도산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형 은행의 줄도산이 이어질 경우 '이탈리아발 금융위기'라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탈리아 은행들의 부실대출(NPL) 규모는 약 3600억유로(약 446조6000억원)에 이른다.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전체 NPL의 3분의 1에 달하며,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133% 수준이다.

렌치 총리는 이들 은행의 NPL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간 구제금융 및 구조조정을 위한 결의안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국민투표 부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며 이 같은 절차는 모두 멈출 전망이다.

FT는 지난달 렌치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경우 최대 8개 시중은행이 줄도산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여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몬테데이파스키 은행도 포함됐다. 몬테데이파스키 은행은 국민투표 직후 50억유로 규모의 증자 및 NPL 재조정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렌치 총리의 사퇴 여파로 이 같은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FT는 전했다.


시티인덱스의 캐슬린 브룩스 리서치 책임자는 CNN머니에 "국민투표 결과를 차치하고서라도 이탈리아 은행은 현재 매우 허약한 상태"라며 "앞으로도 강력하고 고통스러운 재구축 기간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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