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임금피크제’ 밀어붙이던 정부, 늘어난 인건비 공기업에 미뤄

김용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05 17:49

수정 2016.12.06 09:38

예고된 ‘인건비 부족사태’ 임금피크제 삭감 임금으로 신입사원 채용하긴 역부족
정부는 "경영평가에 반영" 공기업은 "정부가 책임져야"
임금피크제 도입 탓에 불가피하게 인건비를 더 쓸 수밖에 없었던 공기업들이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할 처지에 직면했다.

제도 도입 당시엔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의 임금삭감률 등을 기관 자율에 맡겨 인건비 부족 사태를 초래하도록 만든 정부가 지금에 와선 인건비는 각 기관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직원 한 명당 신입사원 한 명을 고용하라고 지침을 내렸지만 임금피크제에 걸린 직원들의 삭감률에 대해서는 노사 합의에 따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런 탓에 일부 공기업 중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직원의 삭감금액과 신입사원의 연봉이 불일치해 기존 직원들의 복지후생을 줄여 충당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일각에선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노사 합의' 등 전제조건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밀어붙일 당시부터 예견됐던 문제가 지금에 와서 불거지고 있는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公기업 "임금피크제 도입하라고 할 땐 언제고…"

5일 정부와 복수의 공공기관에 따르면 지난 2일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은 세종특별자치시 조세재정연구원에서 '2016년 인건비 인상률 탬플릿 설명회'를 개최했다.


정부의 경영평가를 받는 119개 공공기관.준정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설명회는 각 기관의 인건비가 어떤 식으로 계산돼 경영평가에 반영되는지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 자리는 '성토의 장'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공공기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불가피하게 인건비를 더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정부가 이를 고려치 않고 기존과 동일한 잣대로 경영평가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임금피크제란 근로자가 일정 연령에 도달한 시점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청년채용 확대를 주요정책으로 추진하던 정부는 지난해 모든 공공기관에 선제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도록 강제했다.

고령자인 상위직급자의 임금삭감분을 통해 신입직원을 채용할 재원을 만들기 위해서다. 임금피크제 대상자 1명당 의무적으로 1명의 신입직원을 채용토록 했다.

한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요구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탓에 인건비가 급증했음에도 정부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경영평가를 하려고 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현재 경영평가를 받는 모든 공공기관.준정부기관은 예산을 집행할 때 정부로부터 통제를 받는다. 인건비 역시 정부가 정해둔 총액을 넘길 경우 경영평가의 감점 사유가 된다. 이는 공기업이 스스로 이익을 남기는지 여부와 상관없다. 만약 인건비로 쓸 여유자금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어도 정부가 정해둔 인건비 총액을 넘겨선 안된다. 그러나 기재부 공공정책국 관계자는 "경영평가 기준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던 것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고 달라질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인건비 부족 사태는 예견된 일? "무책임한 정부"

하지만 정부의 주장과 달리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인해 인건비 총액이 증가하는 상황은 제도도입 당시부터 예고된 '잡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임금피크제 도입 기관들의 인건비가 증가한 가장 큰 이유는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임금삭감액'이 신입직원의 '초봉'보다 적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입직원 초봉이 4000만원이라면 1억원을 받던 상위직급자가 자신의 임금을 60%로 줄여야 임금피크제 대상자 1명당 신입직원 1명을 뽑을 수 있다.

따라서 인건비 총액에 구멍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처음부터 정부가 각 기관의 신입직원 초봉을 고려해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임금삭감률을 정했어야만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기재부 공공정책국 관계자는 "임금삭감률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관 내부에서 노조와의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정부로선 개입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또 만약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임금삭감액과 신입사원 초봉을 맞췄다 해도 인건비 총액에 구멍은 발생한다.


임금피크제 대상자인 상위직급자가 '보직'에서 물러날 경우 아래 직원들이 줄줄이 승진을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호봉승급 재원이 별도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 같은 상황에 처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부족한 인건비 총액을 충당하기 위해 결국 나머지 직원들이 연차수당 등을 포기해야 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또 임금피크제 대상자는 "정부가 2년에 받을 돈을 4년에 나눠주겠다고 하면서 급여도 후배들이 받을 돈을 빼앗아 받는 모양을 강요하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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