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반성문’

2014년 여름부터 기류가 변했다. 박근혜정부가 처음부터 강조했던 '창조경제'의 방식이 이상해졌다.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스타트업(창조경제)은 늘 연결된 고리다. 중소기업을 취재하는 부서가 따로 있지만 김대중정부 때도 그랬고, 박근혜정부에서도 스타트업 육성정책과 스타트업을 취재하는 것은 ICT 기자의 중요한 일이었다.

ICT는 다른 어떤 산업보다 빠르게 혁신이 일어나는 분야인데, 혁신은 태생적으로 대기업이 잘할 수 없는 과제다. 큰 몸집을 유지하면서 성장해야 하는 대기업에 혁신의 모험은 너무 위험하다. 그래서 혁신을 주도하는 스타트업 취재는 ICT의 한 부분이다.

그 덕분에 용어가 어렵다는 구박부터 받는 창조경제의 정의부터 진행되는 과정 하나하나를 취재했었다.

처음엔 창업경제를 만들자는 것이 창조경제였다. 누구라도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회사를 설립하는 게 어렵지 않도록 기반을 만들어주자는 것이었다. 또 스타트업이 만든 상품, 서비스를 내다 팔 수 있는 유통구조를 갖춰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들 스타트업의 아이디어가 절실한 대기업들이 있었다. 위험천만한 혁신의 최전선에 내몰려 있지만 대기업이라는 굴레 때문에 혁신을 실현하지 못하고 고민하던 삼성전자, SK텔레콤, KT, 네이버 같은 회사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창업과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만든 게 창조경제혁신센터다.

그런데 2014년 여름 달라졌다. 전국 17개 도시에 대기업들이 혁신센터를 하나씩 세운다고 했다. 그때부터 창조경제는 필요한 대기업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정부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사회공헌 숙제가 됐다. 산업군별로는 스타트업의 혁신 DNA가 당장 필요없는 대기업도 많다. 그들에게는 센터를 세워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게 짐이다. 그런데도 누군가 무조건 밀어붙이고 있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2016년. '최순실'이라는 주홍글씨가 박히면 아무리 해명해도 믿어주지 않고 나쁜 사람, 나쁜 짓으로 몰리는 지경이 됐다. 그 주홍글씨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박히고 있다.

센터에 주홍글씨가 박히는 것은 큰 문제 아니다. 큰 문제는 주홍빛이 번지고 있는 창업경제다. 스타트업이 나고 자라고 성공할 생태계다. 창업 생태계 전체가 통째로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창조경제와 스타트업을 취재했던 기자로서 반성한다.
창조경제의 추진 방식이 달라진 그 변화를 깊이 취재하지 않은 것을. 어렴풋이 정부의 높은 분들이 대기업과 실무 공무원들에게 밀어붙이는 잘못된 창조경제에 악착같이 달려들어 '틀렸다'고 기사로 말하지 않은 것을. 높은 분들이 시키는 일을 코피 흘려가며 밤새워 해내고 있는 과장 사무관 같은 실무 공무원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고 스스로 이해해버린 것을.

그래도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모든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창업경제 자체에 '최순실표' 주홍글씨를 박으면 안 된다. 지킬 것과 버릴 것을 가려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cafe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