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동북아시아, 폭풍 속으로

김 홍 재 베이징 특파원

기자가 3년 전 중국에 도착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한국 대통령 중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중국에서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기자가 베이징특파원을 맡기 전해인 2013년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교인 칭화대를 방문해 중국어 연설을 통해 "한국과 중국이 새로운 20년을 여는 신뢰의 여정이 시작됐다"고 밝힌 것이 주효했다. 여성 지도자가 드문 중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중국어로 한·중 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연설은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중국의 전승기념일 70주년 행사를 맞아 다시 한 번 중국을 방문해 천안문 성루에 올라 시 주석 바로 옆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했다. 당시 중국과 적대적인 미국의 만류에도 중국의 전승기념식에 참석하면서 중국인들의 박 대통령에 대한 인기는 한류 스타들보다 높았고 한·중 관계가 역대 최고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당시 기자가 중국의 한 경제단체에서 주최하는 저녁 자리에 참석했을 때 간부급 인사가 "박 대통령은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미국의 간섭에도 미·중 관계를 중시하는 등 외교정책도 잘하고 있는데 왜 한국 내 일부에서 반대집회 하는 기사들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중국인들의 박 대통령에 대한 태도는 올해 7월 박 대통령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한 이후 백팔십도 달라졌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사드 배치 결정 후 사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방어용이라는 한국의 주장을 무시하고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반발 공세를 높이더니 박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리자 사드 배치 결정과 최순실 사태를 연계시키며 사드 백지화에 앞장섰다. 한발 더 나아가 중국 당국은 겉으론 부인하고 있지만 '한한령'(限韓令)을 발령해 한류를 막고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 중국법인에 대해 세무조사에 나서는 등 보복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내년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일본, 미국 등 동북아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폭풍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 탄핵과 내년 대통령 선거를 시작으로 중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압박을 예고하고 있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내년 1월 취임, 미국의 공백을 이용해 세계질서 재편에 나서려는 중국, 트럼프 당선자 및 대만 등과의 협력을 통해 반중국 전선을 넓히려는 일본, 이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대단히 조심스럽고 그 선택에 따라 국익이 결정되는 어려운 국면에 대한민국이 서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한·중 관계는 탄핵과 대통령 선거로 사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질 것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핵, 수출 등 대중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볼 때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드 문제가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며 "중국 당국도 이를 잘알고 있기 때문에 사드 배치가 백지화될 때까지 압박 강도를 높여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한 트럼프 당선자가 내년 1월 20일 대통령에 공식 취임하면 중국과 정치·경제적으로 치열한 격돌이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자가 최근 37년간 금기를 깨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한 것은 그동안 경제 문제에만 집중해 오던 중국의 허를 찔렀다. 이는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 후 미국 우선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함께 중국을 외교·군사적으로도 견제하겠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 틈을 이용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달 말 진주만을 방문해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미·일 동맹 강화에 나선다.

내년 동북아 정세는 연초부터 격랑이 예상되면서 한국에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명분만 좇다 실리를 챙기지 못하는 우를 되풀이해선 안 될 것이다.

hjki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