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뭐 이런 걸 다..] 원룸 냉장고 화재, 세입자가 죽으면 누구 책임?

오충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17 09:00

수정 2016.12.17 09:00

우직하게 주방 한구석에서 묵묵히 일하는 냉장고. 가전제품 중 가장 크고 무겁습니다. 이사 왔을 때 한 번 자리 잡으면 옮기는 일도 드물죠. 24시간 365일 전원이 들어와 있어야 음식이 상하지 않기 때문에 전기 코드를 뽑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뒤편은 먼지가 잘 쌓이나 청소는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소홀한 관리는 화재를 부르곤 합니다만 냉장고는 위험한 기기로 보이지 않아 잘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난로나 가스레인지, 다리미 같은 직접 열을 내는 기기들만 위험한 게 아닙니다. 국민안전처 국가화재정보센터의 2015년 발화관련기기별 화재건수자료를 보면 가스레인지(1,938건 .1위) 다음으로 냉장고(김치냉장고 포함 334건 .2위)가 많은 화재를 불러옵니다.
가스레인지 화재의 97%(1,887건)는 사용자 부주의로 분류됐습니다. 그러나 냉장고 화재는 1.5%(5건)만 사용자 부주의가 원인이었습니다.

사람 잘못으로 불이 나지는 않지만 너무 믿어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이(92%, 306건) 전기적·기계적 원인으로 발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먼지, 수분, 과열, 불완전접촉 등을 냉장고 화재의 주범으로 지목합니다. 청주소방서는 올해 3월 ‘가정용 냉장고 발화 재현 실험’을 했습니다. 먼지 쌓인 부품(PCP기판)에 습기를 뿌리자 불꽃이 일어났고 주변으로 불길이 옮겨붙었습니다. 잘 관리하지 않으면 냉장고도 끔찍한 화재사고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두 건의 판례를 보면, 법원도 일반적인 인식과 같이 냉장고를 위험한 기기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2015년 서울고등법원은 냉장고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의 원인을 기기 하자에 있다고 보고 제조사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면서 "냉장고는 사회통념상 소비자의 신체나 재산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으로는 여겨지지 아니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청주지방법원도 냉장고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관련 판결에서 “가정용 소형 냉장고는 화재 위험성과 관련해 고도의 주의의무를 요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위 2015년 서울고법 사건은 냉장고 전기트래킹이 화재를 일으켜 비닐하우스를 태운 사건입니다. 전기 트래킹이란 전류가 습기, 먼지를 따라 주변으로 잘못 흘러 열이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피해자는 그 안에 보관 중이던 자신의 미술작품이 모두 타는 피해를 당했습니다. 법원은 제조사가 70%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3천 5백만 원을 피해자에게 지급하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닐하우스가 습기와 먼지에 취약하긴 하지만 전기 트래킹이 일어난 것은 제조사의 잘못이 더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청주지법 판결은 사건이 조금 더 복잡합니다. 건물 1층 원룸은 공실이었고 옵션에 포함된 냉장고는 코드가 빠진 상태였습니다. 세입자가 입주를 위해 냉장고 코드를 꽂았고, 자리를 비운 사이 전기트래킹으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애꿎게도 2층에 혼자 살던 세입자 이 모씨(32.여)가 대피하다가 복도에서 연기를 흡입해 숨졌습니다. 피해자 가족 측은 “집주인이 냉장고 관리(설치·보존)를 소홀히 했고 방호조치 등이 미비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습니다.

청주지법은 “집주인이 공실이었던 원룸의 냉장고 관리에 소홀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집주인이 냉장고를 완전무결하게 관리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냉장고는 위험한 기기가 아니라는 사회적 통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원룸 건물에 소화시설들을 설치해야 하는 법률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2002년도에 준공된 해당 원룸 건물은 최근 바뀐 관련 법 적용을 받지 않아 단독경보형감지기 등을 설치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처럼 옆방 냉장고 탓에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이 죽어도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 중 27.1%는 1인 가구입니다. 그만큼 원룸은 일반적인 주거형태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우리 주변에 흔합니다. 이런 사고는 먼 이야기가 아닌 ‘나‘ 혹은 주변 사람에게 직면하고 있습니다.


안전사고로 생명이 사라진 후에 ‘누구 책임이냐’하는 문제를 논하는 일은 참으로 슬프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복잡다단한 원인으로 발생한 사고를 어느 한쪽에만 감당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생명을 향한 공감이 궁극적이고 시스템적인 해결의 출발이 될 것입니다.



ohcm@fnnews.com 오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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