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재훈 칼럼] 럭비공 규제에 망가진 면세점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21 16:50

수정 2016.12.21 16:50

'5년 시한부' 특허가 문제의 근원.. 경쟁력 회복 위해 등록제 해야
정부·국회는 되레 규제에 열심
[이재훈 칼럼] 럭비공 규제에 망가진 면세점

시내면세점 '3차대전'이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면세점 사업자 선정과정이 '최순실 게이트'에 엮인 의혹이 제기돼 특검 수사와 감사원 감사 결과를 기다려야 할 상황이다. 특히 면세점 사업권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딜'을 했다고 의심받는 롯데의 경우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특허가 취소될 수도 있다. 면세점 대전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닌 셈이다. 면세점 사업은 어느덧 검은 거래의 온상처럼 인식되고 있다. 정작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에 대해선 모두들 까맣게 잊은 것 같다.


박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 간에 청탁과 돈거래가 있었는지는 특검이 밝혀야 할 일이다. 지난해 11월 2차 면세점 특허 심사를 한 후 불과 5개월 만인 지난 4월 관세청이 신규 면세점을 추가 선정하겠다고 한 것이 뭔가 석연찮긴 하다. 그러나 2차 심사 결과 기존 업체인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SK워커힐 면세점이 탈락한 직후 상황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수많은 종업원들이 해고되고 면세사업의 안정성이 흔들리게 되자 규제 일변도의 면세점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박 대통령도 "일부(야당)의 인기영합적 주장과 생각이 많은 실업자를 낳았다"며 면세점 제도 개선을 공언했다. 지난 2, 3월 SK.롯데와 독대하기 전의 일이다.

홍종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 2013년 통과된 관세법 개정안이 문제였다. 이 법은 면세점 특허기간을 기존의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고 기존 업체의 경우 만기에 재심사받도록 했다. 대기업에 특혜를 주지 않겠다는 명분 아래 진입장벽을 높이 세운 셈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도처에서 나타났다. 5년 한시 특허로는 면세사업을 영위할 수가 없다. 면세사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커서 흑자를 내는 데만 4~5년이 걸린다는 게 정설이다. 특허유지가 불투명하면 해외 명품 브랜드 유치도 어렵다. 오죽하면 면세점 전문지 무디리포트가 특허기간 단축을 놓고 "한국 정부가 제 발에 총을 쏜 셈"이라고 지적했겠나.

관료와 정치인은 이처럼 면세점의 속성을 전혀 모르고 일을 저지른다. 면세점이 항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 면세점이 호황을 누린 건 2010년대 이후 유커(중국인 관광객) 붐 때문이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의 자유화 조치로 6개(1985년)였던 시내면세점이 29개(1989년)까지 급증했으나 올림픽 이후 거품이 꺼지면서 11개(1999년)로 줄어든 적도 있다. 지난해 6개였던 서울시내 면세점이 내년에는 13개로 늘어나는 반면 유커는 줄어들고 있어 말 그대로 무한경쟁시대가 열렸다. '특허=특혜'라는 공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규제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면 정답은 하나다. 면세점 특허제를 신고제 또는 등록제로 완화하는 것이다. 일정 요건만 갖추면 누구든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면 특혜도, 검은 거래도 있을 수 없다. 관세청은 대기업, 글로벌 기업의 독과점이 우려된다고 했는데 물정 모르는 소리다. 세계 면세업계는 대형화, 강자독식이 대세다.

국회와 정부는 '나 몰라라'다. 국회는 최근 특허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환원하는 관세법 개정안을 무산시켰다.
이 법안에 최순실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추측에서다. 기획재정부는 면세점 심사 때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특허수수료를 최대 20배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는 사이 세계 1위 한국 면세점의 경쟁력은 급전직하하고 있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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