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여의도에서] 일방적 여론몰이에 냉가슴 앓는 기업들

김성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23 17:57

수정 2016.12.23 20:56

[여의도에서] 일방적 여론몰이에 냉가슴 앓는 기업들

'대통령 탄핵정국'이 지속되면서 그 불똥이 일부 기업으로 튀고 있다. 어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민심에 반하는 '정치적 견해'를 밝혔다가 일방적인 매도와 함께 이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고초를 겪고 있다.구설에 오른 또 다른 회사의 오너는 직접 해명에 나서고 사과도 해보지만 때가 때인지라 별무소용이다. 가뜩이나 불경기에 '불매운동'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문제는 이 기업들은 사업 영역에서 소비자인 국민들과의 접점이 큰 내수업종이어서 민심이라는 이름 아래 '악덕기업'이라는 억울한 처분을 무작정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7차 촛불집회가 있었던 지난 10일 한 외국계 주류업체는 공식 페이스북에 촛불집회를 보드카 병 모양으로 형상화한 광고사진을 게재했다가 혼쭐이 났다.
사진 아래의 '책임감있게 즐겨라'라는 문구에 네티즌들은 "국민들의 엄중한 목소리를 술 회사 광고로 변질시켰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단순 술 광고를 떠나 앱솔루트의 광고 성향을 볼때 '촛불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사'라는 호평도 나왔지만, '거리의 함성'에 무력하게 묻혔을 뿐이다. 광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기획이 기업과 일반 대중의 인식에 상당한 격차를 방증하고 있다는 평가와 시류에 따른 '일시적 해프닝'이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한 중견 식품기업 회장은 온라인 카페에 촛불집회를 비판하는 글과 함께 "촛불집회 참가 국민은 폭도"라고 주장하는 보수단체의 동영상을 올렸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논란이 일자 게시글을 내리고 사과했지만 인터넷 불매운동 청원게시판에는 1만여명의 시민이 서명했다. 또 다른 의류 유통업체 사장은 대학 특강에서 촛불집회 참여자를 비난하는 듯한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 역시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공부를 해야만 미래 목표를 더 잘 달성할 수 있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돌아온 것은 불매운동에 따른 매출감소였다. 보수단체에서는 미성년자인 유명 여배우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게시글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녀는 특정 대선후보를 지칭하는 듯한 짤막한 소감을 올렸다가 출연광고 기업의 제품을 모두 사지 않겠다는 원색적인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이 단체 회원 중 일부는 아직 학생인 그녀를 두둔했지만 '어른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데는 역부족이다.

불매운동은 대부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된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논란이 된 기업의 본사 홈페이지 주소나 e메일 주소를 공유하며 항의 메일 보내기 운동까지 펼치는 등 오프라인으로까지 영역을 넓히는 추세다. 반면 촛불집회로 인해 매출이 늘어난 일부 기업들은 '특수'라는 말조차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더구나 집회 인근 매장의 매출 증감을 '대외비'로 하고 있다는 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다.

트렌드나 유행을 많이 타는 유통업체들은 대중의 평가에 매우 민감하다. 그런 점에서 기업도 공인이다. 국민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국민들로부터 엉뚱한 오해를 사고 압박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잘못에 대해선 비난도 달게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앞뒤 가리지 않는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갈길 바쁜 기업의 앞길을 막는 것도 문제다.
대내외적 악재가 잇따르는 요즘엔 더욱 그렇다.

win5858@fnnews.com 김성원 생활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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