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이대로 가면 '잃어버린 20년'이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26 16:45

수정 2016.12.26 16:45

성장률·인구구조 닮은꼴.. 지금껏 버틴 日 대단한 저력
우린 견딜 힘이나마 있을까
[곽인찬 칼럼] 이대로 가면 '잃어버린 20년'이다

인류문화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다소 떨떠름한 주장을 편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그들은 성장기를 같이 보낸 쌍둥이 형제와도 같다." 이거야 원, 왜 하필 일본이란 말인가. 생김새가 비슷한 건 알겠지만 쌍둥이라니.

그런데 보면 볼수록 두 나라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 기자 출신인 다마키 다다시씨는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 일어나고 있는 일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어쩌면 '타임머신'에 해당할지 모른다"고 썼다('한국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 미래 한국의 모습을 과거.현재의 일본에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지국장을 지낸 다마키씨는 양국 사정에 정통하다.

LG경제연구원의 이지평 수석연구위원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일본 전문가다.
도쿄에서 태어나 대학도 일본에서 다녔다. 그는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는가'라는 책을 펴냈다. 책에 "일본과 한국의 방송문화에 모두 익숙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얘기 중 하나는 한국의 TV 방송 트렌드가 약 20년 전의 일본과 비슷하다는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어떤 면이? "쇼 프로그램의 집단MC 체제부터 쿡방까지 모두 오래전 일본에서 유행했다."

1990년대 초 버블이 꺼진 뒤 일본은 청년실업이 심각해졌다. 불안해진 젊은이들은 안정된 직장을 찾았다. 잘릴 염려 없는 공무원의 인기가 쑥 올라갔다. 아버지 세대에 비해 소득이 적은 젊은 층은 연애나 여행엔 도통 관심이 없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과연 한국 경제는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의 수렁에 빠질 것인가. 일부에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거품이 한창일 때 도쿄 중심부 땅을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사고도 남는다 했다. 우린 그 정도는 아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같은 제동장치가 보글보글 거품을 막았다. 주가도 일본에 비해 얌전한 편이다. 거품은커녕 지긋지긋한 박스권에 갇혀 있다. 요컨대 한국에선 자산버블 우려가 일본만큼 크지 않다.

그러나 더 큰 잣대, 예컨대 수출과 성장률, 출산율 지표를 들이대면 한국은 일본의 뒤를 졸졸 좇고 있다. 죄다 바닥을 긴다. 이미 일본은 노인공화국이다. 100명 가운데 거의 서른 명이 65세를 넘긴 노인이다. 일본에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 그럴까, 한국은 고령화 속도에서도 일본을 성큼 따라잡았다. 갓난아이 울음소리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성장률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내 의견은 이렇다. 한.일 경제는 쌍둥이지만 쏙 빼닮은 일란성은 아니다. 자산버블이 터질 우려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인류학적으로 보나 인구구조로 보나 둘이 쌍둥이라는 점만큼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두 나라는 이란성 쌍둥이라 할 만하다. 한국은 일본의 뒤를 따라 잃어버린 20년의 수렁에 빠질 확률이 꽤 높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시민혁명이니 국가 대청소니 적폐 청산이니, 거대하지만 공허한 단어가 어지럽게 춤을 춘다. 하루하루 살기 어려운 민초들에겐 먼 얘기다. 일본은 설마 하다 병을 키웠다.
그래도 20년 장기불황을 버텼으니 대단한 저력이다. 우리는 어떨까. 혹시 지금 설마 하면서 병을 키우는 것은 아닐까. 병을 키우는 것마저 일본을 따라 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우리는 불황터널 속에서 몇 년을 버틸 수 있을까. 최상책은 예방이다.
대권을 꿈꾸는 이들에게 묻는다. 벼랑 끝에 선 한국 경제를 살릴 당신의 복안은 무엇인가.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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