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탄핵 정국에 끼어든 북한과 중국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27 16:50

수정 2016.12.27 16:50

[구본영 칼럼] 탄핵 정국에 끼어든 북한과 중국

"황당하기 그지없는 개꿈을 꾸지 말라." 며칠 전 북한 대남 선전매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이처럼 적의를 드러냈다. 내년에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보수 진영의 주자로 출마 가능성이 큰 반 총장에 대한 견제구였다. 북한이 우리 사회에 일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수임을 새삼 깨닫게 했다.

사실 '탄핵 정국'에 북한은 이미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북한 매체들은 연일 박근혜정부의 퇴진은 물론 남한 내 보수세력 퇴출을 겨냥한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촛불시위 장면을 전하는 영상에서 북한 지도부의 고민이 묻어난다.
서울의 화려한 거리나 빌딩숲을 쏙 빼고 시위 인파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어서다.

지난 8월 귀순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얼마 전 국회 정보위에서 '촛불'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대규모 시위에도 국가 시스템이 정상 가동되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요지였다. 이는 역설적으로 김정은 유일 체제가 남한의 자유로운 반정부 시위가 북한 내부로 번질 개연성을 우려해 몸을 사리고 있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9일 탄핵안 통과를 기점으로 북한이 대남 비난횟수를 일평균 33회에서 19회로 줄였다는 게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북측이 탄핵 국면에 정교하게 접근하고 있음은 뭘 뜻하나. 김정은 정권이 쉬이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징표일 수도 있다. 김정은 집권 초기 일부 전문가는 그가 1년을 넘기기 어렵고, '군부집단지도 체제'가 출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 정부는 '통일대박'이 코앞에 온 것인 양 통일준비위원회를 띄웠다. 하지만 모두 '희망적 사고'일 뿐이었다. "김정은이 우리 대선이 있는 내년 6.7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태 전 공사의 증언까지 나왔지 않나.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도 한반도가 격랑의 바다에 떠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박 대통령 탄핵을 기화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를 무산시키기 위한 중국의 공세를 보라. 중국 관영 매체들이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 때문만이 아니라 (사드 배치라는) 잘못된 전략적 판단으로 벌을 받았다"(글로벌타임스)는 등 궤변을 늘어놓고 있어서가 아니다. 한류나 한국 관광에 대한 간접적 통제를 넘어 현지 진출 롯데그룹에 대해 고강도 세무조사를 벌이는 등 대놓고 보복에 나선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탄핵 정국은 더욱 질서 있게 수습돼야 마땅할 것이다. 탄핵소추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와 친박단체의 '맞불집회' 간 불협화음은 그래서 불길하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되면서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이미 탄핵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탄핵 정국은 이제 여태껏 가보지 못한 길로 접어든 만큼 오로지 헌법과 법률을 나침반 삼아 항해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를 놓고 누구든 압력을 행사할 생각을 말아야 할 이유다.

"인간은 흔히 작은 새처럼 행동한다.
눈앞의 먹이에 정신이 팔려 독수리가 내리 덮치려 하는 것도 모르는 참새처럼…."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그는 위기 속에서 내부 반목으로 무너지고 있던 조국 피렌체공화국의 현실을 그렇게 개탄했다.
이는 어쩌면 '박근혜 이후'를 노리며 사드 백지화 등 성급한 안보 포퓰리즘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네 대권주자들이 되새겨야 할 경구일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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