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해묵은 먹거리 싸움만 하는 SI(시스템통합)업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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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소프트웨어(SW)가 살길'이라는 말은 이제 교과서 1페이지 첫째 줄에 나올 법한 고전이 됐다. 우리나라 SW산업은 '정보기술(IT) 서비스'라고 부르는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이 시작하고 주도해 왔다. SW라는 개념조차 흔치 않던 1980년대 초, 손으로 처리하던 기업의 복잡한 서류 업무를 컴퓨터로 대신할 수 있도록 전산화하는 도구가 SW였다. 삼성SDS, LG CNS, SK㈜ C&C가 주역이다. 이들은 금융업, 제조업, 유통업 등 산업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SW라는 것을 일반인이 알도록 했다. 이들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기술자를 키워내 한국 SW산업을 자라게 했다.

그러나 SI기업들이 한국 SW산업을 망치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SI업체들이 전산화 사업에서 연간 수조원씩 곶감 빼먹는 맛에 정신이 팔려 세계 SW산업의 흐름에 맞춘 미래투자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도기업들의 미래 SW투자 외면은 한국 SW산업의 구조 자체를 1980년대에 붙잡아두고 있다는 원망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017년의 SW는 1980년대와 다르다. 전산화의 도구인 SW는 이제 SW로 쳐주지도 않는다. 그 대신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분석 같은 게 인정받는 SW다. 스스로 부가가치를 만들어 소비자의 지갑을 열 수 있는 것이 SW다.

옛날 얘기가 길어졌다. 지난해 말 정신 못 차린 SI업체들의 치킨게임에 치밀었던 울화가 아직 풀리지 않아서다.

지난해 말 LG CNS와 SK㈜ C&C가 산업은행 차세대시스템 사업을 서로 차지하겠다며 싸웠다. SK㈜ C&C가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는데, LG CNS가 SK㈜ C&C 컨소시엄 개발자가 허위로 기재됐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이 무산됐다. 두 회사는 소송을 하네 마네 다퉜다.

지난해 상반기 교보생명 차세대시스템을 놓고도 두 회사는 비슷한 싸움을 벌여 시장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SW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 산업을 뒤흔들고 있는 2016년에 한국 SW산업의 두 대표기업이 30년 묵은 사업모델을 놓고 싸우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경쟁사의 입에 들어간 떡이라도 꺼내 먹겠다고 덤비는 모양새는 보는 사람까지 초라하게 만든다. 한국형 알파고, 왓슨을 만들고 이것으로 수백개 중소 SW기업들이 먹을 수 있는 떡을 만들어내야 할 대표기업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에 화가 났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이들이 새 SW사업을 찾아내고 투자해 SW기업으로 변신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30년 사업모델에서 남은 곶감이라도 먹겠다고 마음먹은 SI업체로 버티는 게 걱정이다. 2017년 SW산업의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구분해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