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만약, 성장이 멈춘다면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08 17:09

수정 2017.01.08 17:09

[데스크 칼럼] 만약, 성장이 멈춘다면

경제지표에 마이너스(-)가 붙은 모습은 익숙지 않다. '사두면 집값이 올랐고, 일자리는 본인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찾았다'는 1970년, 1980년대 고도성장시기를 직접 경험하진 않았다. 당연히 플러스(+) 지표의 수혜를 직접적으론 받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제로(0)에 가까워지는 지표들을 볼 땐 본능적으로 움찔한다. 바닥을 드러내는 외환보유액, 줄어드는 일자리 등의 수치로 기억되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마이너스 지표를 일시적으로 체감했지만 플러스 지표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강하다.

한국 경제성장률 0% 시대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하늘을 향해 화살표가 그려지는 성장률 그래프와 '자전거론'에 익숙하다면 충격을 받을 물음이다.
'자전거론'은 한국 경제는 줄곧 달려야지 멈추면 넘어진다는 것이다. 뒤로 가는 자전거는 말할 나위도 없다.

국내외 경제기관이 예측하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대다. 정부가 2.6%를 목표로 잡았다. 한국은행 전망치 2.8%보다는 낮지만 민간 싱크탱크인 LG경제연구원(2.2%),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2.4%)보다 높다. 통상 전망치에 비해 실질 성장률은 낮다는 것을 감안하면 2%대, 더 정확하게는 1%대 성장시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1980년대 한국의 성장률은 평균 8.6%, 1990년대는 6.4%였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성장이 멈춘 것이라고까지 볼 수 있다. 더구나 2%대라도 성장하면 좋겠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발목을 잡을 요인이 너무 많다. 정치.사회 불안에 따른 경제적 기회 상실 등은 차치하고라도 단기적으론 미국 새 정부가 주도할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이에 따른 통상마찰 심화가 장애물이다. 중국 경제불안도 부담이다.

향후 전망은 더 어둡다. 한국개발연구원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50년 1%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몇 해 전 이미 전망했다. 인플레이션 없이 안정적으로 늘릴 수 있는 국가경제 규모가 이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의미다.

'경제=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믿는 사람들에겐 겁나는 미래다. 그러나 인류경제사를 보면 저성장 혹은 제로성장은 흔한 일이다. 서기 1~2000년대의 세계 성장을 추정한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은 성장의 척도인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820년대 이후 늘었다고 분석했다. 최근 200년이 경제사에서 볼 때 예외적 시기라는 의미다. 산업혁명(1760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경쟁 등을 성장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요인으로 제시했다. 일본 아사히신문도 최근 '경제성장은 영원하지 않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데 저성장에 만족하고 살자는 게 아니다. 한국은 반도체.정보통신기술.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역량이 충분하다. 과거의 성장세를 회복할 내공은 차고도 넘친다. 최대 아킬레스건인 인구감소 또한 평화적 남북통일이라는 히든카드로 넘어설 수 있다.

다만 30년 가까이 제로에 가까운 성장을 해 온 일본과 일본인의 "전 세계적으로 최근의 성장률 둔화는 오히려 경제활동의 정상화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문제의식을 꼽씹어봐야 한다. 최근 상품을 사지 않고 공유하는 공유경제의 급부상은 고성장 시대의 미덕이던 대량소비경제의 종언일 수도 있다.
국가든, 개인이든, 사회든 저성장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지 준비해야 한다. 성장이 멈춘다고 세상이 멈추는 건 아니다.
'만약 성장이 멈춘다면...'이란 고민도 필요하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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