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누가 국민연금에 돌을 던지랴

'독립' 이야기 나올 때마다 쌈짓돈 취급하는 국회가 발목
이번에도 개혁 쉽지 않을 것

국민연금 지배구조를 고쳐 독립성을 높이자는 얘기는 적어도 14년 전부터 나왔다. 노무현정부는 집권 첫해인 2003년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민간인으로 바꾸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이 안은 16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이듬해 탄핵에서 살아남은 노 대통령은 다시 개정안을 냈다. 이때 처음으로 기금운용공사를 신설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국민연금공단 내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독립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질질 끌었다. 정치인들에게 국민연금은 쌈짓돈이다. 독립성을 높여봤자 좋을 게 없다.

집권 마지막 해인 2007년 노 대통령은 또 개정안을 냈다. 내용은 파격적이다. 기금운용위원회를 복지부에서 분리시켰다. 당연히 위원장은 민간 몫이다. 위원 자격은 금융.투자 분야 전문가로 국한했다. 그리고 그 아래 기금운용공사를 두어 돈을 굴리도록 했다.

2007년 정부안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국민연금을 한국은행.한국투자공사(KIC)와 비교했다. 한은엔 금융통화위원회, KIC엔 운영위원회가 있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위가 이에 해당한다. 그 아래 집행기구인 한은, KIC가 있다. 이에 대응하는 조직이 기금운용공사다. 당시 복지부 보도자료엔 "한국투자공사 이상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개편안 역시 무산된다.

바통은 이명박정부가 이어받았다. 취임 첫해인 2008년 개정안을 낸다. 내용은 2007년 안과 대동소이하다. 역시 헛수고였다. 다시 바통은 박근혜정부로 넘어간다. 2015년 7월 개편안을 내놨다. 내용은 되레 퇴보했다. 복지부 장관 아래 국민연금정책위원회를 두고 그 아래 기금운용위를 둔다. 다시 그 아래 기금운용공사를 신설한다는 내용이다. 과거 개편안의 핵심이던 기금운용위 독립은 없던 일이 됐다. 그런데 이 안마저 야당이 반대했다.

어영부영하다 최순실 사태가 터졌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이 불거졌다.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구속됐고,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특검을 들락거리고 있다. 이번 일이 아니라도 국민연금은 진작부터 수술 대상이다. 10년 전 국민연금공단은 신뢰도 조사를 실시했다. 국민연금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47%에 그쳤다. 불신하는 이유는 '기금운용을 잘못하고 있어서(31.8%)'가 가장 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로는 '정치논리 등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가 44.4%로 가장 높았다. 지금 신뢰도를 조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을 보듯 뻔하다.

나는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KIC가 아니라 한은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본다. 한국투자공사법에는 KIC의 중립성을 보장하는 조항이 없다. 반면 한은법은 한은 정책의 중립성을 보장한다(3조). 국민연금은 사실상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다. 그 중요성이 한은보다 못할 게 없다.

그런데 가만, 과연 우리 국회는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까. 난 못한다에 한 표를 던지겠다. 독립 울타리를 치면 정치가 끼어들 여지가 좁아진다. 정치인들에겐 자충수다.
벌써부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공공임대주택 사업에 국민연금을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이다. 더구나 올해는 대선이 있는 해다. 만약 20대 국회가 '기금운용위 독립, 운용공사 신설' 개편안을 통과시키면? 그땐 국회를 향해 넙죽 절을 하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