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품격 있는 후보검증, 유권자에 달렸다

지령 5000호 이벤트
대선전이 벌써 후끈 달아올랐다. 여론조사상 앞선 주자들에게 견제구가 집중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외교고문이 딱 맞다"고 평가절하하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수도 이전(남경필 경기지사.안희정 충남지사) 등 지역민심을 건드리는 공약도 고개를 들고 있다.

조기 대선 분위기를 탓하긴 어렵다. 5~6월 대선도 이론상으론 가능하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헌법재판소가 인용한다면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르게 된다. 문제는 이 경우 유권자가 후보를 판단할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박 대통령의 임기 초반 인사난맥상에 불길한 예감을 가졌었다. 청문회 과정에서 총리와 장관 후보 여럿이 낙마하는 걸 보면서다. 그래서 칼럼을 통해 인사가 만사임을 경고했었다. 역사학자 한스 위테크의 "신은 누군가를 멸망시키기에 앞서 뜨거운 권력을 누리게 한다"는 '섬뜩한' 명언과 함께…. 물론 당시엔 '최순실'을 걸러내지 못한 부실한 후보검증이 대통령의 탄핵을 부를 것이라고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의 곤경은 최씨처럼 함량미달의 인물을 곁에 두고 직언하는 이들에게 '레이저 눈빛'을 쏘는 데서 비롯됐을 법하다. 골수 지지자들은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4억5000만달러를 퍼주거나 유엔 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북측의 '결재'를 구한 전직 대통령들의 국기문란에 견줘 박 대통령 탄핵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도 박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불통의 리더십에는 고개를 내젓고 있을 게다.

앞당겨 점화된 대선판은 대권 잠룡들로 차고 넘친다. 이들이 국민을 섬길 능력을 갖춘 용인지, 욕심만 가득한 이무기인지를 가려내는 게 급선무다. 그러지 않으면 작금의 탄핵사태나 역대 정권의 임기 말 비극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지금 가뜩이나 안보와 경제 양쪽에서 격랑을 맞고 있다. 생산성 하락과 저출산으로 성장잠재력이 떨어진 데다 탄핵정국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설상가상이다. "소비.투자.수출이라는 세 성장기둥이 동시에 무너져내리는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고 있다"(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는 진단도 엄살만은 아니다. 게다가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빌미로 통상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본마저 위안부 소녀상철거를 요구하며 경제협력을 거부하는 판이니….

'박근혜 이후' 대한민국 호(號)가 상어가 우글거리는 동북아 해역에서 좌초해선 안 될 말이다. 5년간 키를 잡을 선장 후보들을 무대에 올려 발가벗기다시피 검증해야 할 이유다. 다만 혹독한 검증의 당위성은 인정하더라도 지켜야 할 금도는 있다. 검증을 빙자해 '아니면 말고'식 음해나 흑색선전이 횡행해선 안 될 것이다. 요즘 정치판이 그래서 걱정스럽다.
반 전 사무총장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금품수수설을 확산시키거나, 구미시청 방문 때 문 전 대표를 향해 색깔공세를 편 행태가 그렇다.

다행스러운 건 정치꾼들보다 국민들에게 믿음이 간다는 점이다. 문화를 융성시키겠다며 재벌들로부터 수백억원대를 모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을 따지는 국회 청문회 기사에 붙은 한 네티즌의 댓글을 보라. "당신들도 '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이라는 (문화창달에 실효성 없는) 법을 '협잡'해 5조여원이라는 혈세를 낭비했잖니"라는. 유권자들의 분별력이야말로 품격 있는 후보 검증을 이뤄낼 지렛대일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