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문성후의 직장 처방전] ‘보고 울렁증’ 때문에 출근하기 겁나요

이대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31 09:00

수정 2017.01.31 09:00

[문성후의 직장 처방전] ‘보고 울렁증’ 때문에 출근하기 겁나요
요즘 ‘보고 울렁증’을 호소하는 후배 직장인들이 정말 많더군요. 얼마 전에도 B대리가 새벽에 전화를 걸어와 울먹이는 겁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가며 열심히 보고서를 준비했는데 부장 앞에만 서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생각대로 안 나온다는 거예요. 보고를 시작한지 1분도 안 돼 뒷장을 덮어버리는 부장님 앞에 다시는 서고 싶지 않다며 하소연을 하는데 정말 안쓰러워 혼났습니다.

요즘 에코 세대는 누구 앞에서든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다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B대리처럼 부끄럼쟁이 직장인들이 적지 않아요.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소통하는데 익숙하다 보니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요. 대인관계 장애까진 아니라도 아버지 나이대의 상사에게 매끄러운 말솜씨를 뽐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직장인에게 보고란 숙명과도 같은 일. 어렵고 불편하다고 무한정 뒤로 미룰 수는 없습니다. 상사에게는 보고를 받는다는 것은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영어로 ‘당신의 나의 상사가 아니다’라는 뜻의 말은 “I don't report to you"입니다.
보스에게는 꼭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보고를 어차피 해야 한다면 자신만의 필살기 한두 개쯤 장착하는 노하우가 필요하겠죠. 보고 울렁증에 시달리는 후배 직장인들을 위해 제가 터득한 비법을 하나 알려드리죠. 전혀 어렵지 않아요. 딱 세 가지만 따라하면 됩니다.

■ 상사 사로잡는 보고 노하우 세 가지

말주변 없는 곰 같은 B대리도 예능인으로 탈바꿈시키는 보고 비법 첫 번째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적절히 활용하는 겁니다. 보고서에 굳이 넣을 필요는 없지만 보고 내용과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를 곁들여 보고에 잔재미를 주는 거죠.

“알고 보니 그 업체가 이번에 이 사업에 투자를 한 계기가 따로 있더라고요. 사장 조카가 이 분야에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투자를 적극적으로 권했다고 합니다.”

“요즘 A신문사가 그 업체를 자꾸 밀어주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그 회사에 지분이 상당하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업무와 관련 있는 소문들을 약간의 양념처럼 곁들이면 상사 귀에 더 쏙쏙 들어가겠죠. 운이 좋다면 무심코 전한 이야기가 상사의 고급 정보와 만나 핵심 메시지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상사를 사로잡는 보고 노하우 두 번째는 상사의 감정선에 맞춰 적당한 리액션을 하는 겁니다. 원래 상사들은 사회적 체면 때문에 언제나 절반 정도의 감정은 끌어내리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부하 직원이 대신해서 “제가 가서 뒤집어 놓고 오겠습니다”라고 소매를 걷어붙이면 어떻겠습니까. 말로는 “쓸데없는 짓 마라”고 해도 속으로는 마음이 풀릴 겁니다.

오버 리액션을 하란 말이 아니에요. 보고 내용에만 빠져 있지 말고 보고를 받는 상사의 표정과 감정선을 세밀하게 살펴서 그에 맞는 반응을 표현하란 겁니다. 논리적인 설명보다 감정적인 공감이 더 큰 전달력을 발휘하는 법이니까요.

■ 보고는 ‘다큐’가 아니라 ‘예능’이다

가뜩이나 스트레스가 쌓여 있는데 보고까지 지루하고 재미없으면 귀에 들리지 않을 겁니다. 보고서 자체는 드라이한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그것을 말로 전달할 때는 약간의 예능감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리포터(Reporter)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를 결합한 ‘리포테이너(Reportainer)’가 되라는 거지요.

하지만 만약 ‘샤이’ 직장인이라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이 찬스가 되겠군요. 그건 바로 상사가 평소 즐겨 쓰는 단어와 표현을 적극 활용하는 겁니다.

외국 유학파 출신 상사들 중에는 ‘모멘텀’이나 ‘레버리지’ 등 특정 영단어를 자주 쓰는 분들이 적지 않지요. 보수적인 상사들은 한자 성어를 즐겨 쓰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익숙한 언어를 보고에 적극 활용해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100℃가 되어야 물이 끓는다’는 문장을 즐겨 쓰는 상사라면 “이 프로젝트는 아직 100℃가 안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보세요. 상사 입장에선 자신의 말을 따라하는 직원이 귀엽기도 하고, 평소 자신의 말에 집중했음을 확인하게 되니 자연히 후한 점수를 주게 됩니다.

많은 후배 직장인들이 달변가를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보고는 순발력이 아니라 신뢰와 깊이로 승부하는 겁니다. 보고의 본질은 스피치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거지요. 어설픈 달변보다는 준비된 눌변이 훨씬 낫습니다.
어눌하고 느린 듯하지만 오래 끓은 뚝배기 같은 보고! 거기에 약간의 양념만 넣어준다면 당신도 충분히 리포테이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문성후 Hoo소스 대표/미국 뉴욕주 변호사회원/<누가 오래가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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