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성구의 소비자경제] '외부 입김'에서 자유로운 문화산업을 위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12 17:37

수정 2017.01.12 17:37

[이성구의 소비자경제] '외부 입김'에서 자유로운 문화산업을 위해

최근 문화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것으로 인해 사회가 떠들썩하다. 사실 정부의 문화 분야에 대한 예산 지원의 기준은 어느 정권에도 존재했을 것이고 지원 기준에는 각 정권의 의도가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에 특별히 문제가 커진 것은 문화융성을 국정과제로 내세우면서 편가르기를 하고, 어쩌면 문화융성의 핵심은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일 텐데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시도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면서까지 문화계 흐름을 바꾸려 한 정권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권보다도 문화계의 협조를 받기 어려웠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시장주의와 소비자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데도 유명 연예인들이 공공연하게 개념 발언을 하거나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자칫 정권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오해된 경우에는 즉시 해명하는 촌극이 왜 생겼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생각이 정권의 생각과 다른 점도 있었겠지만 소비자들의 구매력과 시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촛불민심이나 그런 행동을 함께하는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이 이러한 거대한 힘의 원천이 소비자와 시장주의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것과는 다르게 정부의 힘을 크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규제완화도 반대하며 정부가 기업을 옥죌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문화계에 대한 정부 지원에 대해서도 대체로 적극적이다.
물론 문화활동이 갖는 사회적 기여를 생각할 때 문화에 대한 정부 지원이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의 지원과 규제의 힘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낸 배경이다. 사실은 참여정부 시절에도 진보성향 사람들에 의한 문화단체의 지배와 예산지원이 문제가 된 적이 있고, 이명박정부에서 무리하게 이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거센 저항이 있었던 것이다.

즉, 문화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필요한 것이지만 자칫 정권 입맛에 맞는 획일화를 시도할 유혹에 빠지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문화에 대한 지원을 소비자에게 하면 어떨까. 문화를 공급하는 자를 선별해 지원할 것이 아니라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선택은 소비자의 몫으로 두자는 것이다. 부득이 공급자를 지원하는 경우에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나 문화예술인이 되고자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옳다.

어떤 사람들은 소비자들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 그렇지 않아도 상업성이 판치는데 문화에서마저 세속주의가 지배하도록 맡겨둘 수는 없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물론 소비자가 만능은 아니지만 그들은 잘못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을 받기 위해 맘에 들지 않는 문화상품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블랙리스트의 진실을 밝히고 그 책임을 묻는 것만큼 블랙리스트가 발 붙이기 어려운 문화지원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yisg@fnnews.com 이성구 fn소비자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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