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4류'가 '2류'를 개혁하나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15 17:18

수정 2017.01.15 17:18

[데스크 칼럼] '4류'가 '2류'를 개혁하나

대선 때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 있다. '재벌개혁'이다. 이번에도 차기 대선주자들은 너도나도 재벌개혁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재벌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 더욱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다는 선거의 속성을 안다. 막대한 부를 소유한 소수의 재벌에 반감을 가진 대다수 국민들이 재벌개혁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재벌의 폐해를 개혁해 건강한 한국 경제를 만드는 게 옳다.


그러나 일에는 순서가 있다. 개혁이란 그 주체가 정당성과 진정성을 가졌을 때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과연 현재의 정치권이 누굴 개혁할 만한 위치에 있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국정혼란 속에서도 포퓰리즘, 지역주의, 계파주의, 반대를 위한 반대 등 행태에 빠져 대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이 아닌가. 누가 누굴 개혁하겠다는 것인가. 재벌 개혁보다 정치권 개혁이 시급해 보인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사회변화 속도에 대해 기업은 시속 100마일, 시민사회단체는 90마일로 변한다고 했다. 이에 비해 정치는 시속 3마일로 변한다고 했다. 정치가 기업보다 후진적이란 얘기다.

오죽하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은 과거 "기업은 2류, 관료와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작심발언을 했을까. 이 발언이 나온게 지난 1995년이다. 그후 20여년이 흘렀건만 정치는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치권이 재벌개혁 운운하는 건 모순이다.

요즘 정치권이 주도해 출범한 특검의 행보도 우려스럽다. 수사가 여론몰이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일부 민감한 수사내용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수사는 철처히 증거와 사실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여론의 눈치를 봐서는 안된다.

특검이 '뇌물죄'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퍼즐을 맞춰가는 식의 수사를 진행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게 사실이라면 끼워맞추기식 표적수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권력이 요구하는 데 거부할 간 큰 기업이 있겠는가.

특히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적은 기업인들을 출국금지나 구속수사까지 강행할 경우 '과잉 수사'라는 비난을 피하기도 어렵다. 주요 기업인들에게 족쇄를 채울 때 발생할 경제적 피해는 국가와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살얼음판이다. 그러나 외교는 리더십 부재 속에 구멍이 뚫린 모습이다. 마치 조선시대 병자호란 직전의 국제정세와 유사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중립외교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던 광해군 정권을 무너뜨린 인조 정권은 외교 실패로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병자호란을 맞았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나오는 "외교를 모르는 자들이 임금을 옹립하니 반드시 전쟁이 날 것이다"라는 대사가 떠올려지는 상황이다. 국정혼란에 경제도 위기상황이다.
미국의 신임 대통령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를 공식화하면서 우리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경제제재를 노골화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기업들은 특검에 발목이 잡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꾸만 영화 '최종병기 활'의 대사가 "경제를 외면하는 자들이 국정을 주도하니 반드시 경제가 도탄에 빠질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고쳐져 들리는 이유는 왜일까.

hwyang@fnnews.com 양형욱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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