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차장칼럼] 어느새 '주범'으로 몰린 기업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17 17:03

수정 2017.01.17 17:03

[차장칼럼] 어느새 '주범'으로 몰린 기업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무기상인의 불일치한 언행에서 유래된 '모순(矛盾)'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고사성어다. 상인은 방패를 팔면서는 "어떤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다"고 했고, 창을 팔 때는 "그 예리함이 천하일품이라 어떤 방패라도 단번에 뚫어버린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을 자초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의혹이 석 달째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아직도 온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이번 사태의 결말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처음 의혹이 제기될 당시만 해도 국민은 '설마'했다. 그러나 최순실이 썼다는 태블릿PC 하나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상황은 급전됐다.
다음 날 현직 대통령이 부랴부랴 대국민 사과를 했고, 곧바로 초대형 권력 비리로 비화됐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기류가 묘하게 흘러갔다. 최고권력자와 비선 실세에 초점이 맞춰졌던 국면은 점점 '정경유착과 기업 비리'로 변질됐다. 아마도 지난달 6일 9명의 기업 총수가 출석한 국정조사 1차 청문회가 전환점인 듯싶다. 청문회 직후부터 촛불 현장에 기업인을 구속하라는 구호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국민적 기대를 한껏 안고 출범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사실상 '삼성 특검'에 올인했다. 특검 출범 전부터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임원들부터 비공식 조사하는 등 삼성에 대한 수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재계와 법조계에서는 '박영수 특검이 삼성을 잡아야 최고권력자를 잡을 수 있다는 수사 방향을 굳혔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어 이를 증명하듯 특검은 지난 16일 뇌물공여, 횡령, 위증 등 세 가지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삼성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했다. 최고권력층의 강요에 못 이겨 돈을 냈는데 주범으로 몰린 상황을 받아들일 순 없다는 것이다.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대가성으로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혐의를 명백히 입증할 객관적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정황 증거들뿐이다. 증거법정주의를 채택한 우리나라 사법체계와는 거리감이 있다. 더욱이 도주나 증거인멸 가능성은 특검도 주장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을 구속 수사한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외신들도 이 부회장 구속 시 삼성과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앞다퉈 타전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이 부회장 구속에 대한 세간의 반응이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더라도 초일류 기업인 삼성 경영에는 별다른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가 없어도 삼성은 잘 굴러갈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 깔려있는 듯싶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룹을 벼랑 끝으로 내몰게 한 결정을 그가 했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건 이치에 맞는 것인가. 모순은 초나라 상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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