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新 청춘백서] "언제까지 '노오력'만 하게 할 거야"

이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21 09:00

수정 2017.05.16 14:05

#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A(25)씨. 졸업과 동시에 3,000만 원이 넘는 빚을 지게 됐다. 그는 “학자금 대출 이자가 싸다고 하지만 금액이 높아 이자에 또 다른 이자가 붙는다”며 “현재 50만 원씩 갚고 있지만 80~100만 원까지 늘릴 생각”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지만 빚을 갚기 위해 포기하는 것이 많아진 그. 하루 빨리 빚을 갚아 자유롭게 삶을 살고 싶은 게 소원이다.

저성장 올가미에 갇힌 대한민국에서 청춘들은 갈 곳을 잃었다.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며 완벽한 스펙을 원하는 시대. 기업은 모든 걸 갖춘 A급 인재를 원하고 ‘노오력(노력을 평가절하 하는 말)’을 더 강요하는 현실에 청춘들은 숨이 막힌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 실업자 100만 시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서울 상위권 사립대 출신 B(32)씨. 토익 940점, 어학연수 1년, 봉사활동에 인턴 경험 등 남부럽지 않은 스펙을 갖췄지만 3년째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높은 곳만 바라본다는 불편한 시선도 있지만,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통계청이 11일 발표한 ‘2016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자 수는 101만 2천명으로 사상 첫 100만 명을 돌파했다. 실업률은 3.7%로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청년실업률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청년(15세~29세) 실업자 수는 43만 5천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5년 역대 최고치인 39만 7천명을 1년 만에 또 경신한 것으로 고용시장 한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2012년 7.5%, 2013년 8.0%, 2014년 9.0%로 꾸준히 상승했다. 특히, 2015년 9.2%에서 지난해 9.8%로 크게 올랐다. 40대(2.3→2.1%), 50대(2.4→2.3%) 실업률이 2015년보다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6년 전체 평균 고용률은 60.4%. 청년(15세~29세) 고용률은 42.3%로 평균치에 한참 모자랐다. OECD 비교 기준인 15~64세 고용률은 66.1%로 전년대비 0.4%P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이 수치는 60대 이상 장년층과 여성의 사회진출이 급격히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일시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 너도나도 공시생.. “대한민국 최고 직업은 공무원?”

공무원 시험 준비 3년차 D(29)씨.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자신만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아 불안하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원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며 “앞서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자괴감이 커지지만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기에 마음을 다 잡는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공무원 전성시대다. 심각한 취업난에 재수보다 공시를 택하는 고3 수험생도 늘어났다. 지난해 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70만 6천여 명. 이는 약 60만 명이 응시한 수능시험보다 10만 명 이상 높은 수치다. 이 중 최종 합격자는 3만 여명 정도다.

공시생이 1년 만에 합격하는 비율은 10%가 채 안 된다. 합격자의 40%는 수험 기간이 2~3년, 3년 이상 장기 수험생도 50%에 달한다.

준비기간도 길고 합격하기 어려운데 공시생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움츠러든 경제와 불안한 현실에 너도나도 안정을 택하기 때문이다. 행자부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 9급 1호봉의 세전 급여는 각종 수당까지 포함해 대략 2,500만원 수준이다. 이는 대기업 초봉 (3,490만 원)보다 적고 중소기업(2,190만 원)보다 많다.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꾸준히 월급이 인상되는 장점도 있다.

사회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도 공시생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연차나 수당 등 근로자의 기본 권리마저 보장하지 않는 기업들의 관행이 공시생 열풍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올해 5, 7, 9급 국가직 공무원 채용 인원은 6023명이다. 지난해(5372명)보다 651명(12.1%)이 늘었다. 이러다가 전 국민이 공시생이 될 지도 모른다는 말은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출처 : 한국노동연구원 '2016 비정규직 노동통계' 보고서
출처 : 한국노동연구원 '2016 비정규직 노동통계' 보고서

■ 비정규직 해마다 증가.. “헬조선은 언제까지?”

취업한파에 어렵사리 직장 문턱을 넘어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16 비정규직 노동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644만 4천명으로 전체 임금 근로자 1,962만 7천 명 중 32.8%를 차지했다. 이는 2003년과 비교하면 약 200만 명 늘어난 수치다.

더군다나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보다 크게 열악했다.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을 100%로 봤을 때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상대임금은 53.5%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60%대 수준이었던 2003년~2008년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게다가 2008년 국제금융 위기의 여파로 국내 실물경제가 위축되면서 고용부진을 경험했던 2009년 54.6%보다도 더 낮다.

근속기간은 정규직이 88.6개월, 비정규직은 29개월이었으며, 여성(54.9%)이 남성(45.1%)보다 비정규직이 많았다. 한편, 비정규직은 사업서비스업(14.0%), 정규직은 제조업(25.5%)에 가장 많이 종사했다.

안정적이고 질 좋은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 취업에 성공해도 비정규직이라는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대한민국의 근로자로 월 200만원을 버는 것은 힘들기만 하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더니 집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라 한다. 꿈과 희망을 포기하라더니 이제는 외모와 건강까지 포기하라고 하는 현실.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겉핥기식 대책은 또 다른 문제점만 양산할 뿐이다. 언제까지 청춘들에게 ‘노오력’만 강요할 것인가?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