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지갑 잃어버려.. KTX 타도록 4만원만 빌려주오” 서울 도심 정장 남성 주의보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22 15:03

수정 2017.01.22 15:03

#.직장인 박모씨(29)는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에서 50대(추정) 정장차림의 A씨에게 ‘차비사기’를 당했다. 퇴근길의 박씨에게 접근한 A씨는 “부산의 건설사 임원인데 출장길에 휴대폰과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급히 부산에 가야하는데 지금 가장 빠른 수단을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박씨가 “KTX”라고 답하자 A씨는 “KTX 비용 4만원만 빌려 달라”며 계좌번호에 돈을 넣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연락처까지 건넸다. A씨는 사정이 딱하고 차림새도 단정해 보여 4만원을 쥐어줬지만 돌려 받지 못했다.
최근 서울 도심과 주요역 부근에서 정장차림 남성에게 ‘KTX 차비사기’를 당했다는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기업 임원, 부장 등이라고 주장한 50대(추정)가 사정을 털어놓고 ‘차비’를 챙기고서는 갚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말끔한 모습에 태연한 언변
직장인 오모씨(30)도 올해 초 정장 차림의 말끔한 모습에 태연한 언변의 50대에게 ‘차비사기’를 당할 뻔 했다. 오씨는 “이달 초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인근에서 부산의 대기업에 다닌다는 한 남성이 차비를 빌려달라고 했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 주지 않았다”며 “휴대폰과 지갑이 든 가방을 잃어버려 KTX 비용 5만원을 요구했는데 깔끔해 보였다”고 전했다. 이어 “1주일 뒤 이 사람을 봤는데 서울역에서 차비를 타내려하는 걸 보고 사기라고 확신했다”고 털어놨다.

현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주요 포탈 카페에는 서울 여의도, 광화문, 서울역 등에서 나타나는 정장 차림 등 남성의 ‘차비 사기’를 조심하라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22일 피해자와 목격자들에 따르면 50대 남성은 의사, 대기업 임원 등으로 신분을 바꿔가며 주변 사람에게 접근, KTX 승차권 비용으로 4만~5만원을 타낸다. 이때 연락처를 건네고 계좌이체를 약속하지만 연락처는 없는 번호이고 돈은 갚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이 남성은 부산행 KTX 승차권이 고가인 점을 노려 피해자들에게 일부러 “부산까지 가장 빠른 수단이 뭐냐”고 자주 질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이 현금을 보유하지 않고 있으면 근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직접 데려가기도 한다. 돈을 빌려주지 않는 경우 욕설과 악담을 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고 피해자들은 전했다.

■경찰, 유사 사기피해 수사 나서
실제 경찰에도 이달 중순 비슷한 유형의 ‘차비 사기’ 피해가 접수됐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대전역에서 말끔하게 옷을 갖춰 입은 50대 여성(추정)이 “차비를 주면 계좌로 보내주겠다”며 B씨(29)에게 접근, 2만5000원 가량을 받아 간 뒤 갚지 않았다는 고소장이 접수됐다.

지난해 5월에는 김모씨(55ㆍ무직)가 차비를 빌리는 것처럼 속여 행인에게 돈을 뜯은 혐의로 기소돼 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김씨는 서울역에서 부산행 KTX를 타려는 승객에게 접근해 “부산에 사는 사람인데 지갑을 잃어버렸다. 차비를 빌려주면 계좌로 송금하겠다”며 돈을 갚지 않았다.
A씨와 같은 수법이지만 동일인물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개별 피해금액이 적어 신고가 잘 이뤄지지 않는 점을 노린 사기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차비 사기는 개별적인 고소가 들어오지 않으면 수사하기 힘든 면이 있다”며 “피해자들이 가해자 인적사항을 모르고 피해금액이 적어 신고가 적극 되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범죄가 되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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