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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분식회계 척결, 사전규제만으로 될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22 17:04

수정 2017.01.22 21:17

금융委 회계시장 개입 강화.. 美 엔론 같은 본보기가 중요
금융위원회가 22일 분식회계를 막을 대책을 내놨다. 먼저 분식회계가 들통난 상장사는 회계법인을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 그 대신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가 직권으로 지정한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국민경제에 영향이 큰 회사, 최대주주에 자금을 많이 빌려준 회사 등 분식회계에 취약점이 드러난 상장사엔 선택지정제를 적용한다. 기업이 3개 회계법인을 추천하면 그중 1곳을 증선위가 지정하는 식이다. 직권.선택지정제를 합하면 전체 상장사의 절반가량이다.


직권지정제 대상을 넓히고 선택지정제를 새로 도입한 것은 기업과 회계법인 사이에 존재하는 이해상충을 줄이기 위해서다. 현행 자유선임제 아래에선 일감을 주는 기업이 갑, 일감을 받는 회계법인이 을이다. 을은 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감사보고서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지정제를 활용하면 이론상 을은 갑과 대등한 위치에 선다.

제3자인 증선위의 인위적 개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국제적으로 한국의 회계 경쟁력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2015년 터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특히 대우조선은 공적자금을 투입한 기업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공분을 샀다. 금융위 대책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다만 대책이 사전규제 일색으로 흐른 것은 짚어볼 대목이다. 흔히 그렇듯 금융당국은 사고가 터지면 무더기 규제를 쏟아낸다. 부실회계 방지대책도 명분은 좋지만 결국은 관치 강화로 요약된다. 어쩌면 앞으론 증선위가 회계법인의 갑 노릇을 할지도 모른다. 회계산업의 시장 실패를 바로잡으려다 정부 실패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이를 늘 경계해야 한다.

통상 선진국들은 일단 시장에 자유를 주되 강력한 사후규제로 질서를 잡는다. 지난 2000년대 초 미국에서 터진 엔론 회계부정 스캔들을 보라. 이 일로 엔론도 망하고 회계법인 아서앤더슨도 문을 닫았다. 그러나 대우조선은 수조원대 분식회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산업은행을 통해 신규 자금을 수혈받았다. 회계질서가 바로 선 선진국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회계는 자본시장의 파수꾼으로 불린다.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사후 강력한 처벌이 필수다. 물론 대우조선 사태가 터진 뒤 국내에도 회계부정을 엄중 처벌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대우조선 경영진이 속속 구속되고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도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회계부정은 일종의 살인행위"라며 "징역 50년형에라도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치에만 골몰하는 금융당국이 귀담아들을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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