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포퓰리즘, 그 질긴 뿌리 누가 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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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OO을 해주겠다"는 대선 공약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대접을 받는다"는 프랑스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말이 실감난다. 하지만 아무리 달콤한 공약인들 실현 방도가 없다면 부도날 '약속어음'일 뿐이다.

지난해 지구촌 두 여성 대통령이 탄핵 심판대에 섰다.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에게 그 길을 묻다 본인조차 불행한 처지가 됐다. 빈곤 퇴치를 약속했던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도 탄핵됐다. 회계장부 조작 및 석유공사 비리 의혹이 표면적 사유다. 하지만 그의 비극의 본질은 자신의 선심 정책이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몰랐던 데 있었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재정적자를 감추며 빈곤층에 돈을 뿌렸지만, 브라질 경제는 가라앉고 그 직격탄을 맞은 서민층의 원성만 커졌으니….

전임자인 룰라와 호세프로 이어지는 브라질 좌파 정권의 부침은 인기영합주의가 망친 이웃 아르헨티나의 궤적 그대로다. 천혜의 자원을 가진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 6위 부국이었다. 그런 아르헨티나 경제가 거덜난 배경에는 영화 '에비타'의 실제 모델인 에바와 남편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페론은 두 차례 집권했다. 국민은 1년 일하면 13개월치 임금을 주는 '페론주의'에 환호했다. 마돈나가 에비타로 분해 대통령궁 발코니에서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란 노래를 부를 때 영화 속 시민들이 열광했듯이…. 그러나 당시 높은 실업률 속에 주저앉은 아르헨티나 경제는 걸핏하면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며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녀를 '빈자의 성녀(聖女)'로 추앙하는 시민이 적잖단다. 포퓰리즘의 뿌리는 이토록 질긴 건가.

박 대통령 탄핵 이후 '벚꽃 대선'이란 이름의 조기선거 가능성에 잠룡들이 몸이 단 건가. 벚꽃보다 먼저 솔깃한 공약이 만발하고 있다. 전 국민에게 연간 30만원씩 토지배당(이재명 성남시장), 기본소득제 도입(박원순 서울시장.이 성남시장), 모병제 도입(남경필 경기지사), 전 근로자 3년 육아휴직제(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이 그렇다. 다 이뤄만 진다면 대한민국은 곧 천국일 게다.

문제는 공약 실현을 위한 재원조달 등 '어떻게'가 빠졌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박병원 경총 회장이 "일부 후보들의 보편적 복지는 국민이 창출한 부가가치를 국가가 거둬가 정치인들이 나눠주며 생색내는 정책"이라고 했겠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규모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약속도 포퓰리즘 혐의를 벗기 어려워 보인다. 세금으로 공공부문만 비대하게 만든 결과는 2015년 그리스 국가부도 사태 때 익히 봤지 않나. 시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장면에서 말이다.


아직 구체적 공약을 내놓지 않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논외로 치자. 후발 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유력 후보들의 군복무 단축 공약에 대해 "표를 전제한 공약은 나라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선을 긋고 나섰다. 인기영합주의가 판치기 마련인 선거철에 "정치적 시혜와 포퓰리즘은 청산돼야 한다"는 그의 차별화 선언이 신선하다. 우리네 대선주자들 모두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낸다"는 철학자 칼 포퍼의 명언을 곱씹어봤으면 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