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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근본부터 바꿔라" 유수원 ‘우서’의 충고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2.01 16:46

수정 2017.02.01 16:46

(迂書.너무 멀어 받아들이기 어려운 책)
[fn논단] "근본부터 바꿔라" 유수원 ‘우서’의 충고

영조 시절 조선을 근본부터 바꿀 파격적인 개혁안을 제시한 인물이 있었다. 더욱이 이 개혁안은 개혁군주 영조의 손에까지 들어간다. 1737년 영조실록에는 인재를 추천하라는 명에 대해 이런 기록이 나온다. 비변사 당상 이종성이 "단양군수 유수원(柳壽垣)이 비록 귀는 먹었으나 문장을 잘합니다. 책 한 권 지었는데 나라를 위한 경륜을 논한 것입니다. 헛되이 늙는 것이 아깝습니다"라고 말하자 이광좌가 "신 역시 그 책을 보았는데 책 이름을 '우서'라 합니다.
주장과 논변이 매우 이채롭습니다"라고 덧붙이니 임금이 승정원에 명하여 구해 올리게 했다.

우서(迂書), 너무 멀어 받아들이기 어려운 책이란 뜻이다. 문답식으로 써내려간 이 책의 첫 질문은 "그대가 이 책을 저술하는 것은 내용이 참으로 세상에 시행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가"로 시작한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은 "말단만을 다스리고 근본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옛날 그대로 고질병이 될 뿐인데 이것은 이른바 겉만 치료한 것일 뿐이다"로 끝맺는다. 그는 쉽지 않겠지만 완급을 따져 근본까지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유수원은 나라가 허약하고 백성이 빈곤한 원인은 당파싸움을 일삼는 폐쇄적인 양반문벌에 있다고 보고 관료제 개혁, 신분제 철폐, 상공업 진흥안을 제시했다. 기득권층인 양반은 군역면제 등의 특권을 누리면서도 무위도식하며 관직을 차지하기 위해 당쟁을 일삼고 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사농공상의 신분차별을 철폐하고 양민으로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선비들의 교육, 관리 선발, 근무평가를 엄격히 하고 정부에 봉직하지 않는 자는 농·공·상의 생업에 종사토록 해야 한다. 여기에 기술과 자본 그리고 직업의 전문성을 높인다면 생산은 늘고 이윤도 커질 것이다.

영조는 유수원의 '우서'를 읽어 본 후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저술은 선대 유학자의 말을 뽑아 모아 교묘하게 꾸민 데 지나지 않는데, 이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것만을 기술하였으니, 참으로 귀하다"고 칭송하고 개혁안의 일부를 받아들였다. 이조와 예문관의 후임자 추천에 대한 인사제도를 바꾸고, 군역의 부담을 두 필에서 한 필로 줄인 균역법을 실시한 것이다. 그러나 유수원의 개혁은 거기까지였다.

1755년 나주지방에 '간신이 조정에 가득하여 백성의 도탄이 심하니 거병하노라'는 벽보가 나붙은 사건이 일어났다. 역모자들이 체포, 처형되면서 끝나는 듯한 이 사건은 그 뒤 시행된 과거시험에서 변란을 예고하는 듯한 글이 나타나면서 일이 커졌다. 소론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진 것이다. 유수원도 국왕의 심문을 받고 대역죄로 죽임을 당하고 가족도 노비에 편입됐다.

당시 일본, 중국은 이미 상공업 등 직업에 대한 차별을 없앴다. 이 때문에 교역을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상공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1694년 충주에서 태어난 유수원은 25세에 정시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지만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과 대립하던 소론 출신으로 당쟁과 청력 상실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탕평책을 편 영조의 인재추천에 힘입어 자신의 신분제 개혁 등 혁신안을 소개할 수 있었지만 결국 당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렇게 조선의 근본개혁은 묻히고 말았다.

이호철 한국IR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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