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KT 본게임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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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사에 앉아 있으면 웬만해서는 상큼하고 기분 좋은 소식을 듣기 어렵다. 산업이든 정치든 각 부서에서 보고되는 소식들이 통 찜찜하다.

그나마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는 KT가 연일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는 뉴스를 제공해줘 다른 부장들 몰래 혼자 슬그머니 웃을 수 있는 며칠이었다. 고마운 일이다.

다음달 황창규 회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새 회장을 찾고, 새 회장이 사업 내용을 익히는 동안 공백을 어찌 메울지. 10년 이상 장수하는 최고경영자(CEO)가 긴 호흡으로 큰 바둑판을 설계하듯, 매일 새 기술을 설계도에 맞춰 내놓고 거대 혁신산업을 쥐락펴락하는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을 생각하면 3년 단위 KT CEO의 공백기가 안타까웠다. 그러던 차에 황 회장이 연임 의사를 밝혔고, CEO추천위원회는 그간 황 회장이 이뤄놓은 실적을 인정해 연임을 결정했다.

지난해 KT의 경영실적도 낭보다. 모든 산업이 어렵다고 아우성을 치는 데다 통신산업은 이미 3년 전 '성장절벽' 진단을 받았는데도 KT는 매출과 이익이 고르게 성장했다. 다행이다. 우리나라 ICT산업을 위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좋은 소식을 들으면 한쪽에서 괜한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참 방정맞기도 하다. 잔칫집 분위기일 KT에 재 뿌리는 소리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짚을 것은 짚고 가야겠다.

올해는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다. 벚꽃 대선이든 12월 대선이든 청와대의 주인은 바뀔 것이다. 명예롭지 못하게 퇴임한 전임 KT CEO들의 과거사를 돌아보면 한결같이 CEO 연임이 결정된 뒤 청와대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사달이 났다. 세간에서는 KT CEO의 연임이 청와대 새 주인 결정 전까지 한시적인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이번에는 그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누가 정권의 주인이 되든 경영실적과 미래비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튼튼한 CEO가 자리를 잡아줬으면 한다.

그래서 KT는 지금부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비전과 탄탄한 신뢰를 갖춰야 한다. 지난해 실적도 세세히 따져보면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이동통신이나 유선통신 사업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자회사인 BC카드가 신용카드산업 성장세를 타고 KT그룹 실적개선의 주역이었다.

황 회장이 취임하면서 "KT의 본업인 통신사업의 성장을 이뤄내겠다"고 했던 약속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셈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면 KT가 잔치를 벌이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CEO 연임의 본게임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싶다. 잔치는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고, KT의 성장 밑그림이 인정받는 그때 화려하게 벌였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