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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출판문화계 구조 개혁해야 문화선진국 도약 가능"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2.02 19:13

수정 2017.02.02 19:14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출판계는 정유년 벽두부터 충격적인 소식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서적도매업계 2위로 2000여 거래처를 둔 송인서적이 지난달 3일 부도처리됐다는 소식이었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조짐이 보이자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등이 서둘러 지원책을 발표했으나 출판계와 서점가에 드리운 그늘은 여전히 짙다.

오랜 불황과 독서인구 감소, 지난 시대에 머물러 있는 유통구조까지, 출판문화계가 복잡하게 엉킨 문제를 풀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출판업계 전문가를 만나 진단과 해법을 물었다.

■송인서적 사태 “관이 만든 문제 민간이 막다 쓰러진 격”
지난달 31일 서울 성산동 사회평론 사무실에서 만난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55·사진)은 변화하는 소비패턴을 따라잡지 못한 업계 자체의 잘못에 더해 이를 극대화한 정부의 정책적 오류가 누적돼 오늘의 사태가 빚어졌다고 주장했다.


윤 회장은 송인서적 사태를 비롯해 오늘날 출판계가 처한 상당수 문제의 시발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분 디지털 바람 속에 온라인 서적판매를 차별적으로 지원한 정부정책에 있다”며 “출판업계를 진흥하기 위한 법률이 새로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회장은 “정부가 온라인 서점 탄생 이후 온라인 서점만 할인을 할 수 있는 법률조항을 만드는 등 온라인 서점 성장 위주의 차별적인 정책방향을 취하며 오프라인 서점들이 엄청난 피해를 봤다”며 “오프라인 서점은 할인이 가능해진 온라인 서점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져 이익이 줄고 온라인 서점은 할인가로 책을 팔아 영업이익이 나지 않게 되면서 출판업계 전체의 성장동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인 출판문화계 유통구조는 크게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출판사와 일선에서 독자를 만나는 서점, 이를 연결하는 유통도매업체로 이뤄진다. 여기에 온라인 시장이 확대되며 예스24, 인터파크 등 유통과 판매를 함께 하는 온라인 서점이 가세한 형국이다. 독서인구가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온라인 시장을 지원하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오프라인 시장의 축소를 초래했다. 유통도매업체의 위기는 예정된 일이었다.

윤 회장은 “일선 서점이 연이어 무너지면서 송인이 거래하던 곳이 줄고 피해가 누적되다 결국 오늘의 상황이 온 것”이라며 “송인서적 사태는 관에서 만든 문제를 민간이 막다가 쓰러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정책의 결과로 과잉·과다 축소된 오프라인 서적유통 시장에서 유통업체가 활로를 찾지 못하며 도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오프라인 시장에서 활동하는 업체가) 규모는 영세하지만 고용효과는 도리어 높은 상황인데도 저쪽만 지원한 건 잘못된 판단”이라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쪽 방향으로 치우쳤던 정책의 부정적 영향을 바로잡고 온·오프라인, 디지털-아날로그 간의 균형을 맞춰야할 때”라고 진단했다.

■통계 없는 출판업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각성해야
더욱 큰 문제는 송인서적 도산에도 정부차원에서 근본적인 해법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근본적인 해법은커녕 유통도매업체가 처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출판업계는 송인서적 뿐 아니라 출판사와 전국 오프라인 서점을 중개하는 유통도매업체 상당수가 경영난에 처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 회장은 “일단 채권단이 (송인서적의 구체적인 피해와 운영상황에 대해) 실태조사 중인 것으로 안다”며 “이후 업계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도적으로 실태조사 등 문제해결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자 “기대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윤 회장은 “출판산업진흥원은 전신이 간행물윤리위원회로, 유신정권 때 검열기구로 만들어진 단체”라며 “1990년대 이후 존립 가치가 없어진 것을 출판산업 진흥을 위한 단체로 바꿔 점진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랐지만 2013년 첫 원장부터 낙하산으로 영입돼 출판인들이 7개월 이상 1인 시위를 했을 정도”라고 손을 내저었다.

윤 회장은 “최근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보듯 권력과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갖지 못한 진흥원이 도리어 출판자유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일종의 집행기구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진흥원이 출판업을 진흥할 만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시급히 구조를 개선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유통구조 전반에서 서적판매와 관련한 공식적인 데이터는 전무한 상황이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매주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집계방식 역시 공인된 기관에서 자체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 주요서점으로부터 판매순위 등의 자료를 받아 집계한 2차 자료다. 진흥원과 비슷한 목적으로 설립된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산업 전반에 완성도 높은 통계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정확한 실태파악이 구조개선의 첫걸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기관인 진흥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출판문화 진흥 위한 법·기금 마련 시급
윤 회장은 출판문화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합리적인 법과 기금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한다. 2014년 시행된 도서정가제가 한계에 도달한 서점과 출판사에 숨통을 틔워줬듯 공적영역의 정비를 통해 생태계를 복원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윤 회장은 “전체적으로 시장을 육성하는 법이 마련돼 온·오프라인 사이에 균형을 잡아주고 기업화된 중고서점이 업계 전체의 이익을 해하지 못하도록 제약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와 함께 올해 안에 전문성이 없는 진흥원 대신 출판업계를 중심으로 기금을 마련해 출판문화 진흥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출판문화계 전체의 이익을 키우는 장기적인 관점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독일이나 일본과 같이 안정적인 기금을 바탕으로 출판문화 진흥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지방이나 지역에 가면 일반 시민들이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며 “아주 작은 곳도 아니고 영동이나 충주, 전주 같은 곳에도 책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번화가나 좋은 목에 서점이 있어야 퇴근하며 보고 열차를 기다리며 보고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독서인구가 늘 수가 없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그는 “서점이라는 곳 자체가 책으로 사람들을 연결해서 북클럽도 만들고 전체적인 문화수준을 높이는 공간”이라며 “공적기능에 충실한 유통기구나 세제혜택 등 좋은 제도를 강구해 작은 서점과 출판사도 생존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이 나라 문화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출판업을 사양산업으로 보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서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패션사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했지만 SPA 같은 게 생기면서 새로운 소비패턴을 만들고 엄청나게 성장하지 않았느냐”며 “출판 역시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출판문화계 안에서도 자기 색깔이 있는 출판사,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작은 서점처럼 긍정적인 모델이 늘고 있다”며 “합당한 지원을 통해 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궁리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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