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낡은 이념에 발목 잡힌 4차산업혁명

중국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글로벌 부국강병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18세기 영국이 증기기관으로 산업을 주도한 가운데 19세기 미국이 주도한 전기와 대량생산 그리고 20세기의 컴퓨터와 인터넷은 글로벌 시장 제패의 원동력이 됐다.

중국은 4차 산업혁명에 막대한 자금과 지원을 쏟아부어 과거 영국과 미국이 누려왔던 글로벌 경제패권을 누리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과는 한 국가의 부강을 좌우하는 핵심이 됐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4차 산업혁명 현주소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4차 산업혁명 트렌드에서 낙오해 경제속국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앞선다. 낡은 이념 스펙트럼으로 미래 현상을 재단해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정치권의 퇴행적 이념주의가 뭇매를 맞고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규제를 완화하는 은행법 개정안과 개인정보보호법을 예로 들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제대로 되기 위해선 일단 결제방식의 대변화가 1차 전제조건이다. 모바일뱅킹 혁신을 위해 추진 중인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이 은산분리 논란에 발목을 잡혔다. 은산분리 관련 은행법 개정안과 이를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허용하는 특별법까지 발의된 상태이지만 국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아울러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의 혈액순환과 같다. AI와 빅데이터 관련 제도가 활성화돼야 산업 간 융합이나 하드웨어의 활용이 힘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과도한 개인정보보호법에 발이 묶여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은 여야 간 치열한 공방전만 남긴 채 표류했다. 19대 국회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서 핵심이 빅데이터였다는 점을 놓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선거전략에 관한 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의 필승 전략이 빅데이터였다는 점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세미나는 결국 인권보호 차원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을 풀 수 없다는 감상적 이야기들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을 일구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각종 제도 손질이 진행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폭발력을 견인할 수준이 아니라 생색내기 정도의 손질에 그치니 4차 산업혁명의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진보·보수 이념 틀과 기술진보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가져온다. 어떤 관점에 무게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제도의 방향은 극과 극을 오간다.

또다시 중국의 예를 살펴보자. 한국에서 여전히 생소한 QR코드는 중국인의 생활 전반에 파고들었다. ICT와 멀어보일 것 같은 나이 지긋한 중장년 세대들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QR코드로 물건을 매매하고 지불결제도 해결한다. QR코드의 파괴력 이면에는 따뜻한 정책적 배려도 숨어 있다. 한자 자체가 쓰기 어렵고 복잡한 데다 중국은 문맹률도 여전히 높은 편이다. QR코드를 활용한 간편한 상거래는 문맹으로 인한 상거래 소외 문제를 해결했다.

다양한 모바일결제 확산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될 '화폐의 종말'은 소비자의 편리한 경제생활뿐만 아니라 거래의 투명성을 담보한다. 이미 유럽에서 현금 없는 세상은 현실이 되고 있으며 각국 정부가 제도 정착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소비자의 편리한 경제생활과 탈세를 막는 투명한 거래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4차 산업혁명의 진면목을 우리 정치권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실제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적 이념 프레임으로 구분하려는 정치권 행태를 질타하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정권이 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꺼내들었던 창조경제에 냉소를 보냈던 정치권의 비뚤어진 시각도 곱씹어봐야 한다.

각당 대선후보마다 4차 산업혁명을 새 정권의 핵심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한다. 과연 이념 중심의 가치관으로 기술진보의 순기능을 담아낼 수 있을까 우려된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