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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저비용항공 '오늘도 무사히'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2.13 17:05

수정 2017.02.13 17:22

[차장칼럼] 저비용항공 '오늘도 무사히'

지난해 12월 1일 인천국제공항 국내선 활주로. 40여일 만에 국제선 주기장(공항내 항공기를 세워두는 곳)을 빠져나온 저비용항공사(LCC) 항공기가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군수항공정비 공장을 향해 탈출하듯이 이륙했다. 빡빡한 운항 스케줄로 명성(?)이 자자한 LCC 항공기가 공항에 한달 넘게 묶여 있던 이유는 뭘까. 사정은 이랬다. 같은 해 10월 26일 일본 후쿠오카행 해당 항공기는 인천공항에서 지상조업 중 기체가 파손됐다. 하지만 항공정비를 위한 자체 격납고를 보유한 LCC는 전무하다. 더구나 기체 훼손 정도가 심해 평소처럼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 정비거점까지 운항도 무리였다.

다급해진 업체는 국내에 격납고를 보유한 국적 대형항공사 두곳에 SOS를 쳤다.
그러나 모두 퇴짜를 맞았다. 자사 항공기 정비일정도 빠듯해 타 항공사 항공기를 받아줄 여유가 없었던 것. 사방팔방 뛰어다닌 끝에 유일하게 손을 내민 데가 KAI이다. 사고발생 37일 만이다. 그동안 올스톱된 항공기 한 대로 LCC 항공사가 입은 손실은 약 37억원. 공항에 지급한 정류료 1430만원은 별도다. 다 합치면 정비료보다 많다는 후문도 들린다.

지난해 수송비율 국제선 19.6%, 국내선 56.8%를 차지하는 LCC 업계의 초라한 현주소다. 당장 같은 사고가 발생해도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아시아 주요국 중 한국만 항공정비(MRO) 전문업체가 없다는 점에서도 상황이 달라질 리 만무하다. MRO는 공항 인근 대규모 부지 확보 등 초기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고, 장기적으론 사업 수익성도 감안해야 하니 셈법이 간단치 않다. 제주항공, 에어부산,이스타항공 등이 손잡았던 청주 MRO단지 조성사업이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포기로 전격 백지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지자체들이 MRO 사업에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이 역시 두고볼 일이다.

LCC의 기체.엔진 등 중정비역량 부재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에는 LCC의 동일 항공기가 하루에 두번이나 고장나 승객들이 대피하고 회항하는 황당한 사고도 일어났다. 정부가 2015년 1월 MRO 육성방안을 내놨지만 2년 넘게 진척이 없다. 그동안 중국은 MRO에 33억달러를 지원해 아시아시장 60% 점유율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했다.
20만개 이상 부품이 들어간 항공기의 정비균열은 국민안전 위협요인이자 업계의 공중분해를 초래할 수 있는 중대사안이기 때문에 정부 주도로 산업발전을 이끈 것이다. 어린시절 대중교통 운전석에는 어김없이 소녀가 무릎꿇고 기도하는 영국 레이놀즈경의 '어린 사무엘' 그림이 붙어 있었다.
여백을 채운 글귀는 '오늘도 무사히'. 현재 LCC 이용 승객들의 심정도 크게 다르진 않을 듯하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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