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여의도에서] 한진해운 파산이 남긴 교훈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2.17 17:21

수정 2017.02.17 17:21

[여의도에서] 한진해운 파산이 남긴 교훈

지난 2009년 한진해운이 신규 개장한 부산 신항만 터미널을 찾았을 때다. 당시 한진해운의 신항만 터미널 개장식은 해운업계에서 큰 볼거리였다. 한진해운이 공격투자를 통해 개장한 부산 신항만 터미널을 구경하기 위해 해운업계 유명인사들이 대거 몰렸다.

글로벌 해운시장은 이미 불안한 해운시황의 어두운 그늘이 조금씩 드리워지고 있었다. 해운시황의 전망은 불확실했고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어두운 전망 속에서 한진해운이 부산 신항만에 최신식 터미널을 신규 개장하자 해운업계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당시 한진해운의 부산 신항만 터미널 개장을 축하하기 위해 부산을 찾은 한국선주협회장의 언급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선주협회장은 "신(神)이 아닌 이상 향후 시황 전망을 어떻게 알겠느냐"면서 "향후 시황 전망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시황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해운업계의 투자는 지속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해운시황은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다고 하는 국내 해운업계 대표자의 언급은 당시에 다소 놀랍게 느껴졌다. 조물주만이 앞날을 알 수 있는 해운사업에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감마저 들었다.

한진해운은 그 이후로도 유럽 등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몇년간 공격적 투자를 지속했다. 시장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한진해운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위기는 곧 기회'라는 식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독려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해운시황의 불확실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를 거듭해왔던 한진해운은 결국 창업 40년 만에 사망선고를 받았다. 한진해운이 자랑스럽게 개장했던 부산 신항만 터미널은 개장 8년도 되지 않아서 위기를 맞이했다. 한진해운 마크를 단 컨테이너들만 쌓여 있을 뿐 선적 작업은 거의 중단됐다. 한진해운 소유이거나 빌린 컨테이너는 거의 비어 있는 채로 장기 보관 중이다.

정치권의 개입설까지 나돌았던 한진해운의 파산 이후 한국 해운사에 대한 불신은 한꺼번에 쏟아졌다. 월마트는 한진해운 물류대란 사태를 계기로 향후 한국 국적선사와는 거래하지 않기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해운은 수십년간 공들여 쌓아왔던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할 판이다. 신뢰를 다시 쌓는 기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해운업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성장의 한몫을 했던 주요 산업계의 장기불황의 터널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주력산업이었던 석유, 철강, 조선산업이 장기불황 터널 속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고 가야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방향을 잃은 무모한 전진은 위험만 초래한다. 짙은 안개 속에선 가속하던 차도 잠시 속도를 늦추고 사방을 경계하듯 조심히 달려야 한다.
한진해운의 값비싼 경험이 불확실성 속에서 헤매고 있는 기업들에 교훈이 되길 바란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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