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TDX·CDMA의 성공 방정식은 잊어라

"한국은 통신인프라만 세계 최고다. 다른 것은 없다."

2015년 한 정보통신기술(ICT) 국제회의에서 외국의 ICT전문가가 내린 ICT 최강국 한국에 대한 진단이다.

우리나라의 ICT 강국 도전은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세계적으로 유선통신망 구축 경쟁이 치열하던 시절 유선통신망을 잘 깔기 위한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이 시작됐다.

전 세계 3개 회사만 개발하던 전전자교환기를 한국에서는 구입할 수 없어 국내 유선통신산업이 어렵다는 진단 아래 TDX 개발이 시작됐다. 국산 전전자교환기 개발이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만한 속도로 전국 모든 집에 유선전화를 설치했다.

지난 1991년 세계적으로 디지털 이동전화 도입 논의가 한창이던 시절 우리 정부는 디지털 이동전화 기술과 시장을 선도하겠다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기술 개발에 나섰다. 3년 만에 상용서비스가 시작됐고, 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이동전화 대중화에 성공했다.

TDX와 CDMA의 성공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ICT산업 역사에서도 인정받는 굵직한 성공사례다. 이 성공을 짚어보면 기술을 개발하면 통신회사가 장비를 구입해 전국에 통신망을 까는 성공 방정식이 있다. 또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거친 통신장비와 단말기의 해외 수출길을 열겠다는 정부의 치밀한 정책이 방정식의 해법 역할을 했다.

결국 성장하는 시장과 치밀한 정책적 계산이 한국 ICT 성공의 키워드였다.

30년이 지난 지금 통신 인프라만으로는 ICT 세계 최고라고 자랑할 수 없다는 게 외국 ICT 전문가의 진단인 셈이다. 이제 통신망이 아니라 서비스가 경쟁의 키워드다. 치열한 경쟁을 앞둔 5세대(5G) 이동통신 얘기다. 세계 이동통신사업자연합(GSMA)은 "5G는 무선인터넷 속도가 아니라 서비스 모델 자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30년 전 방식인 '망' 타령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불안한 생각이 든다.

통신 3사는 경쟁회사보다 하루라도 먼저 전국에 5G망을 구축하겠다며 '우물 안 경쟁'을 위해 몸을 풀고 있다. 정부는 세계 최초 5G망 구축을 서두르라고 채찍질을 한다. 정작 5G를 이용해 어떤 서비스로 글로벌 경쟁 대열에 낄 것인지에 대해서는 통신회사의 대책도 없고, 정부의 치밀한 계산도 안 보인다.

정부도 통신회사도 5G 전국망을 깔아놓으면 쓰는 사람도 생길 것이고, 새 서비스도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하고 있다.

TDX와 CDMA 성공의 그늘이 너무 크다. 성공의 그늘에 가려 새로운 성공작전 짜는 것을 겁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 되짚어 봤으면 한다.


성공사례가 없던 TDX·CDMA 시절 정책 담당자들의 후일담에는 빠지지 않는 한결같은 말이 있다. "그것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는 것이다.

5G 정책과 산업 전략을 짜는 사람들이 TDX·CDMA 성공사례를 잊었으면 좋겠다.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새로운 작전을 위해서.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