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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2.21 16:40

수정 2017.02.21 16:40

[여의나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2차 세계대전은 인류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지구촌에는 도도하게 흘러온 큰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국가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온 사실이다. 또 하나는 상품, 자본, 사람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 보다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보자는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즉 세계화이다.

그런데 근년 들어 민주주의 확산이 주춤거린다. 오렌지 혁명이라고 불렸던 중동국가들의 민주주의 실험은 도루묵이 되었다.
또한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세계화에 대한 저항도 거세어졌다. 줌을 좁혀 지구촌 개별국가들의 사정을 보아도 같은 현상이다. 북한과 같은 지독한 폐쇄적 독재국가도 있긴 하지만 자유를 신봉하는 많은 국가들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가치를 받들면서 제도를 만들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그중 하나이다. 아니 매우 짧은 시간에 가장 뚜렷한 진전을 이뤄낸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 불협화가 있다. 한편에서는 민주주의 평등이념이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고 탄식이다. 또 한편에서는 개방과 더 심해진 경쟁으로 격차만 벌어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결코 버릴 수 없는 이 두 기본가치가 조화롭게 운영되는 것이 정녕 어려운 일인가. 민주주의는 평등을 지향하고, 1인 1표로 지도자를 선출하고, 보다 보편성을 갖춘 복지를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한편 시장에서는 경쟁이 있고,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한 효율이 성패를 좌우하면서 모두가 1등이 될 수 없는 구조이다. 앞서가고 있는 나라들을 보면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합의를 통해 제도를 구축하고 시행된 제도에 흠결이 발견되면 다시 협의하고 개선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국제기구가 많이 소재하고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2년 남짓 근무한 적이 있다. 그 기간 내내, 그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누구였는지 모르고 지냈다. 너무 무심한 듯해 현지 이웃들에게 물어봐도 지도자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스위스가 민주주의를 하지 않는 나라일까. 국민들이 저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나라는 잘 돌아가고 국민들은 유족할까. 인구 800만, 국토면적은 우리나라의 절반보다 작은 산악지형의 이 나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8만달러에 국민의 행복지수도 매우 높다.

결국 잘 작동되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정치가 순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는 어떠한가. 많은 조사에서 국민들이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이 정치권으로 나타난다. 가장 무책임한 조직이 국회로 꼽힌다. 여야가 바뀌면 해오던 주장도 정반대로 뒤바뀐다. 4차 산업혁명의 선두에 나서기는커녕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관련 규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아야 하지만 말만 할 뿐 꿈쩍도 않는다. 온 언론들은 날만 새면 정치 이야기로 하루가 간다.

우리 시스템은 또한 어떠한가. 국민들이 아까운 시간에 각각 다른 광장에 모여 아우성을 쳐도 제도가 수용해내지 못하면 그 아우성은 혼란만 만들 뿐이다. 헌법과 1800여개의 법률 그리고 시행령, 규칙 등이 우리 법제를 이루고 있다.
곳곳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제도들이 있다. 권력구조를 뜯어고치는 헌법 개정은 물론이고 그 외의 잘못된 법규와 제도도 고쳐야 한다.
정쟁이 아닌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사회는 둥둥 표류하고 말 것이다.

김종훈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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