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성구의 소비자경제] 외양간도 못 고친 가습기 살균제 사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2.22 16:23

수정 2017.02.22 22:42

[이성구의 소비자경제] 외양간도 못 고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국내 대기업이 획기적(?) 가습기살균제 개발을 발표한 지 23년, 피해 규모는 세월호 참사를 능가하고, 어떤 피해자들은 누구 책임인지도 모르는 채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경과하기도 했다.

얼마 전 국회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특별법을 제정, 피해 판정과 구제를 지원하는 기구를 설치하고 가습기살균제 사업자로부터 거둔 분담금으로 특별계정을 조성해 책임자를 알 수 없거나 사업자에게 자력이 없는 경우에도 피해구제의 길을 열었으며 소멸시효도 연장했다.

하지만 관련 사업자들이 다수이고 원인불명인 채 피해발생 후 장시간 경과해 피해건별로 사업자별 책임범위를 정하기 어려운 특성을 반영한 해결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예컨대 소멸시효를 연장했다지만 특별법 시행 전 이미 시효가 지난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은 미흡하다. 또한 손해배상책임자를 알 수 없는 경우 관련 사업자들이 공동 부담하는 특별계정에서 피해를 구제하도록 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상당수 피해자들은 어떤 제품을 얼마큼 사용했는지 입증하거나 그로 인한 피해를 구분해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누가 '책임자를 알 수 없는 피해자'인지 명확하지 않고, 특별계정에 의한 피해구제는 범위가 한정돼 충분한 배상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특별법에 의한 구제는 종래 환경보건법상의 긴급구제 수준과 유사해 정작 1, 2단계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들을 위한 구제로는 기능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업자별 책임범위를 입증하기 어려운 사건 성격에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개별책임 원칙에 따르다 보니 복수제품 사용자의 경우 피해구제가 매우 번거롭고, 자칫 가장 성실하게 책임지는 사업자에게 피해구제 청구가 집중될 우려도 있다.

특별계정 분담금 결정 산식도 주로 피해 인정신청 조사과정에서 파악된 사업자별 점유율을 기준으로 하는데, 피해자들의 기억이나 입증자료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손해배상을 잘 해주는 회사를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면 회사들은 가능한 한 피해배상을 지연, 회피하려 들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를 막으려면 명확한 증거가 없는 경우 독성화학물질(원료) 사용량 등의 객관적 자료에 의해 분담금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원료별 피해 연관 정도나 원료 공급자 책임도 규명돼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원료 공급업체에 대한 부분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유엔 인권위도 지적한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 제도 불비의 책임은 외면한 채 자력 없는 사업자의 부담을 다른 사업자들에게 떠넘긴 것도 문제이고, 향후 자력이 부족한 회사들이 생길 경우에 대비한다면 보험에 의한 피해구제 보장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다수 원인과 책임이 얽힌 유사한 독성물질사건 예방 및 재발 시 대책은 아직도 마련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한 셈"이다.

yisg@fnnews.com 이성구 fn소비자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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