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순 칼럼]

세금으로 일자리, 누군 못할까

공공부문 81만개.청년배당 등 대선주자들 귀에 솔깃한 말만
진짜 '일자리 대통령' 안보여

1999년 벨기에 영화 '로제타'는 그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 10대 소녀 로제타의 취직을 위한 처절한 행적을 다룬 영화다. 당시 벨기에 청년(15~24세) 실업률은 22.6%, 신규 졸업자의 절반 이상이 백수였다. 영화가 개봉된 후 여론이 들끓자 벨기에 정부는 2000년에 '로제타 플랜'이라는 대책을 내놓는다. 50인 이상 기업은 전체 고용의 3%를 청년으로 채워야 하고 어기면 벌금도 물렸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듯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청년들에게 주어진 건 대부분 질 나쁜 일자리였다. 중장년층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역차별 현상도 일어났다. 기업 경영은 자연히 위축됐다. 각종 부작용으로 실업률이 다시 치솟자 벨기에 정부는 결국 4년 만에 법을 폐기했다. 정부 주도 일자리정책의 한계다.

조기대선 가능성이 커진 우리도 일자리 공약이 넘쳐난다. 일자리를 강제 배분하는 것도 모자라 나라 곳간까지 활짝 열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지지율 1위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연간 30조원 안팎의 예산이 드는 이 공약은 대표적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지목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수조원을 들여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들에게 5년간 매달 50만원씩을 지원하겠단다. 기본소득, 청년배당 등 다른 후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아니니 인심이 넘쳐난다.

헛발질만 해대니 청년실업률은 갈수록 태산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10.7%로 16년 만에 미국(10.4%)보다 나빠졌다. 3년 연속 청년실업률이 상승한 나라는 우리를 포함해 6개국뿐이다. 미국은 지난해 3.4분기 연간 기준 3.5%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했다. 소비회복과 기업투자 증가 덕이다.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이 기간 3.0% 늘어났다. 기업투자에 따른 고용호조가 영향을 미쳤다. 이런 선순환을 이뤄낸 것은 규제를 줄이고 기업에 온갖 혜택을 주면서 투자심리를 살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꾸로 간다. 고용구조의 후진성 때문에 임금격차가 벌어지고 일자리가 감소하는데도 정치인들은 아무도 노동개혁을 말하지 않는다. 말해봐야 표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규제를 풀어야 할 판에 반기업정서에 기대 기업 옥죄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경제활성화 법안은 국회에서 발목을 잡혀 있다. 그러니 대기업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간다. 실제로 국내에 자동차공장이 세워진 게 1996년이다. 20년이 넘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휴대폰을 4억대 넘게 팔았지만 국내 생산은 고작 6.3%다. 지난해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게 다 이유가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올 초 2025년까지 국내 일자리 1800만개가 인공지능이나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충격적 보고서를 내놨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4차 산업혁명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낡은 사고방식과 단견으로 오로지 표 되는 일자리만 찔러댄다. 지속 가능한 좋은 일자리는 결국 기업에서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주체도 기업이다. 그러려면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기업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 대권 후보라면 멀리, 넓게, 깊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