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재훈 칼럼] 4차 산업혁명, 차라리 그냥 놔둬라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01 16:47

수정 2017.03.01 16:47

대선주자들, 경쟁적 공약 발표
규제완화·생태계조성 시급한데 액션플랜 없이 장밋빛 미래만
[이재훈 칼럼] 4차 산업혁명, 차라리 그냥 놔둬라

선거공약도 유행을 탄다.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대표적인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인 듯하다. 대선 주자들이 벌써부터 "4차 산업혁명에 앞장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래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의 이미지를 선점하기에 이만한 재료가 어디 있나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 거대한 기술혁명의 본질을 이해하는지는 의심스럽다.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뜬구름 공약, 방향 착오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유력 대선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애플의 스티브 잡스 흉내를 내며 4차 산업혁명 공약을 발표했다. 노타이 차림에 무선 이어마이크를 차고 멋부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과속을 한 것 같다. 세계 최초의 초고속 사물인터넷망을 구축하고 자율주행차를 위한 스마트 고속도로, 스마트 도시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게 뭔가. 인터넷망은 있어도 사물인터넷망이란 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수많은 디바이스와 사물들이 연결될 뿐이다. 여기에 정부가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스마트 고속도로, 스마트 도시도 개념이 모호하다.

문재인은 정부 주도의 4차 산업혁명을 말한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만들고 과학기술정책 총괄 컨트롤타워를 둔다고 4차 산업혁명이 추진된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1970년대 박정희 패러다임식 발상"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안철수는 4차 산업혁명의 동력으로 교육개혁을 꼽고, 5-5-2 학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해가 가는 방안이긴 하지만 그도 4차 산업혁명 붐업을 위한 구체적 액션플랜은 제시하지 못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해고되는 노동자를 위한 기본소득제를 내세웠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적응도는 세계 25위에 그쳤다. 한국에서는 기업이 마음껏 연구개발하고 사업을 일으킬 환경이 돼있지 않다. 박병원 경총 회장은 "빅데이터.핀테크.드론.자율주행차.원격진료 등 어느 하나 규제의 덫에서 자유로운 게 없어 기업의 투자의지를 꺾는다"고 지적했다. 자율주행차.드론은 촘촘한 규제 때문에 시험운행할 곳이 마땅찮고, 현행 개인정보호법 때문에 빅데이터의 가공처리도 어렵다. 의사들의 반발에 원격진료는 엄두를 못 내고 은산분리라는 진입장벽 탓에 핀테크는 발목을 잡혔다.

한국에서 퇴출된 우버 사례에서 보듯 신사업자와 구사업자 간에 충돌이 생겼을 때 어느 누구도 갈등을 조정하지 않는다. 문재인이건 안철수건 '신산업 규제완화'를 외치지만 정작 소속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규제프리존법,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4차 산업혁명을 지원하는 규제완화법은 '재벌 특혜'라며 처리를 외면하고 있다. 이래서는 진정성이 없다. 정부가 할 일은 이런 규제를 풀어 기업활동을 부추기고,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며 생태계 조성에 힘쓰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화두인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기회지만 위기이기도 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전체 취업자의 70%가 넘는 1800만명이 일자리를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대선주자들이 가장 먼저 대처해야 할 것은 일자리 감소와 양극화 문제다.
기본소득제 재원으로 로봇세를 매기자는 제안이라도 하는 후보는 왜 없나. 4차 산업혁명을 무슨 신기루처럼 묘사하는 공약들은 표 몰이에 급급한 '공약(空約)'일 뿐이다.

ljhoo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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