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삼성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폐지해 사실상 그룹을 해체하고, 계열사별 투명경영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경제 대표선수인 삼성이 그룹 해체라는 혁신선언을 한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삼성그룹이 사태를 만들어낸 주범처럼 몰려 질타를 받더니 결국 그룹 해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20년 전에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원인이 재벌들의 무리한 몸집 불리기 때문이라는 질타가 사회를 뒤덮었다. 당시 정치권과 IMF는 재벌개혁이 사태해결 방법이라고 지목하면서 정책에 의해 영원할 것처럼 보이던 대형 그룹들이 해체됐다. 결국 몇몇 재벌그룹이 사라졌다.

20년이나 된 묵은 기억을 더듬어내는 이유는 사회적 분노를 일으킨 대형사건의 책임을 기업에만 전가하고 정치권력과 사회 시스템이 뒷받침해주지 않았던 사례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해 구글의 '알파고'라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전 세계에 AI 충격을 줬을 당시 우리나라 대기업 임원들 여럿은 "왜 알파고 같은 투자를 미리 하지 않았느냐"는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구글이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라는 회사를 인수해 AI기술을 개발하는 동안 당신들은 왜 투자할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고 야단을 맞았단다.

20년 전 그룹들이 해체되면서 한국에 전문경영인 체제가 급속히 도입됐다. 문제는 전문경영인의 수명이 길어야 6년, 짧으면 3년이라는 것이었다. 전문경영인을 도입한 여러 대기업이 3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성과 중심의 경영에 집중했다. 3년간 근무하고 자리를 떠날 전문경영인이 10년 뒤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장기 기술투자나 사업전략을 세우는 데 눈을 돌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나.

결국 이때부터 한국 대기업들은 AI, 자율주행차 같은 소위 미래형 산업을 멀리 내다보고 미리 투자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 AI나 자율주행차가 새 먹거리라고 확신이 서고, 모든 기업이 달려드는 것이 보이면 그제서야 부랴부랴 남의 기술을 사다가 사업으로 만들어내기에 바쁜 '추격자' 역할에 만족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한국에서는 미래산업 '선도자'는 못 나오는 구조가 된 것이다.

삼성의 혁신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기업과 정치권력이 맞물려 빚어진 사건의 책임을 한쪽에만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기업이 책임지겠다고 나서면 상대방도 걸맞은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삼성그룹 해체 이후 미래산업 장기투자나 전략적 인수합병(M&A) 같은 경제의 큰 그림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걱정을 어찌 줄일 것인지 정부와 사회가 대책을 찾아내야 혁신의 박수소리가 나지 않을까 싶다. cafe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