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대한민국 법치주의는 어디로

"오늘 이 역사적인 장소에 서서 저는 스스로의 완벽하지 못함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짐합니다. 제가 인준이 된다면 이 위대한 나라의 헌법과 법률을 철저히 따르는 공복이 되겠노라고."

지난 1월 31일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미 연방대법관 후보에 지명된 닐 고서치 판사가 행한 수락연설의 한 대목이다. 향후 민주당의 거센 공세가 예상되지만 과거 연방법관 임명 시 만장일치로 인준받은 전력으로 보아 큰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낙관적인 분위기 형성에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그의 겸손한 자세이다. 수락연설의 곳곳에서 그의 인품과 법관으로서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이 내린 모든 판결을 좋아하는 판사라면 분명히 나쁜 판사일 것"이라는 의외의 언급도 있다. 법이 요구하는 결과보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애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판사는 법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고 의회에서 만든 법을 충실히 적용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런 말도 있다. "법복을 입었다고 하여 판사들이 더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법복은 판사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늘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중립성, 독립성, 유대감 그리고 용기가 그것이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법의 계절이다. 헌법을 비롯한 다양한 법을 제대로 꿰지 못하고는 최근 벌어지는 사건을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나 특검의 수사결과를 반대하든 찬성하든 법률 지식이 필수적이다. 탄핵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6명 이상 헌재 재판관의 찬성이 필요하다. 평소 사는 데 별로 필요하지 않은(?) 이런 지식도 이제 모든 국민이 아는 바가 되었다.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를 비난하기 위해서도, 옹호하기 위해서도 일단 법률을 알아야 한다. 법률 전문가는 말할 것도 없고 법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법에 관해 한마디씩 거들지 않으면 말을 이어가기 어렵다. 가히 법과 법률가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법에 관한 말과 지식이 넘치는 만큼 법에 대한 존중심이 커졌을까. 오히려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탄핵심판 최종 결론을 앞두고 홀가분함보다 긴장감이 커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자신의 입맛대로 법을 재단하고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결론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다짐이 횡행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후보들, 특히 법조인인 후보들이 헌재 결론에 대한 불복 가능성을 서슴없이 내비친다. 법률가답게 말은 교묘하게 하지만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인용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변호사협회의 수장을 지낸 변호사가 "아스팔트가 피로 물들 것"이라는 섬뜩한 말을 입에 올린다. 법치주의에 관한 한 대한민국의 갈 길이 아직은 아득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이 고서치 판사의 말을 빌릴 것도 없다. 헌재 재판관을 포함한 법관들이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현명하기 때문에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법관들의 결론이 항상 옳다는 말도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결론에 따르기로 약속한 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완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내리는 결론은 항상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미리 법으로 판단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법관들이 그 잣대를 충실히 따를 것이라 본다. 법복을 입으면서 법관들이 '중립성, 독립성, 양심과 용기에 따른 판단'을 다짐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를 불신하기 시작한다면 대한민국의 기초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고서치 판사처럼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하고 법대로 따르겠다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른바 지도자라는 사람들일수록 법의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