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차장칼럼] 만능 통장과 만능 은행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02 16:59

수정 2017.03.02 16:59

[차장칼럼] 만능 통장과 만능 은행

한때 '만능(萬能)'이라고 여겼다. '전 국민 부자만들기 프로젝트'라는 말도 솔깃했다. 지난해 금융시장의 핫이슈였던 종합자산관리계좌(ISA) 얘기다. 지난해 ISA에 가입한 사람은 총 239만명, 맡겨진 재산은 3조4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1년 만에 열어본 수익률은 참담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일임형 ISA의 평균 수익률은 1.46%로 집계됐다.
특히 은행의 일임형 ISA 수익률은 0.41%에 그쳤다. 1년 만기 은행 정기예금의 평균금리(1.3%)에도 한참 못미친다. 일임형 ISA 평균 수수료율이 0.80%인 것을 감안하면 수수료를 낼 만큼의 수익도 못 낸 셈이다. 증권사 일임형 ISA 수익률은 2.07%로 은행의 4배를 넘겼다.

은행들엔 유독 뼈아픈 결과다. ISA는 은행권이 숙원이던 '투자일임업'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놓칠 수 없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증권사보다 나은 성과를 내서 일임업을 따내고, 미래 먹거리로 삼은 자산관리(WM) 비즈니스에 '올인'하는 꿈을 꿨을 것이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실망한 고객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ISA 중 은행 판매비중은 91%에 이른다. ISA에 가입한 10명 중 9명이 은행을 찾았다는 얘기다. 개인고객에게는 가까운 '동네 은행'이 가장 편하다. 굳이 지점 수를 비교하지 않더라도 금융지식이 부족한 개인에게 증권사 문턱은 상대적으로 높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접근성과 수익률은 역행했고, 피해는 소비자 몫이 됐다.

최근 증권업계와 은행권이 '운동장'을 두고 한 바탕 설전을 벌였다. 금융투자업계가 먼저 법인지급결제 업무를 증권사에도 허용하라고 주장하며 은행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언급했다. 은행권은 "증권사가 법인지급결제를 하겠다는 건 농구선수가 축구를 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했다. 증권사를 초대형 IB(투자은행)로 키우면 세계 IB들이 아닌 국내 은행과 경쟁할 것이라고 했고, 차라리 은행에 '불특정금전신탁업'을 다시 허용해 영역을 허무는 '종합운동장'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지켜보다 쓴웃음이 났다. 운동장이 어디로 기울었건, 초대형이건 초소형이건 정작 관중(소비자)은 관심이 없다. 농구선수가 발로는 축구를 해도 스코어(수익률)만 잘 내면 그뿐이다. 조금 더 멀리 보자. 자유경쟁시장의 원리대로라면 다 잘하는 선수가 다 가져가는 것이 맞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잘하는 선수가 나오고, 그들이 바라는 IB도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만능'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선 긋기에 바쁘고, 영역 다툼에만 치열한 국내 금융시장에서 '만능통장'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만능통장도 어려운데 '만능은행'이라니, 전 국민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것보다 더한 공염불로 들린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금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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