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양 날개의 민주주의

조석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02 16:59

수정 2017.03.02 16:59

[데스크 칼럼] 양 날개의 민주주의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5년 전인 2012년 대선에서 야당의 문재인 후보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패한 이후 정치권, 언론계, 학계 등에서는 진보의 실패 원인을 찾는 데 열을 올렸다.

진보세력은 사회의 현실을 파고들어 민생을 돌보지 못했고, 여전히 1980년대 논쟁에 갇혀 있는 운동정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흑백논리를 근간으로 국민을 편가르기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했고, 끝없는 계파갈등과 예의 없는 언행(소위 '싸가지 없는 진보')으로 정치의 품격과 권위를 훼손했다고 비판 받았다.

그러던 보수와 진보의 처지가 철저히 뒤바뀌었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보수의 지지기반은 사실상 괴멸 상태가 됐다. 정치지형이 진보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보수세력은 전통과 권위,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 법 앞의 평등, 관용과 책임 같은 보수적 가치를 저버리고 권력을 사유화하며 집권의 도덕적 명분을 모두 잃고 말았다는 평가다. 이 결과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진보진영 주자들의 지지도가 전체의 75%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범보수진영 주자들이 20% 안팎의 지지도만을 보일 정도로 보수의 정치적 지형은 빈사상태다.

영국 보수당은 토리(Tory)라는 귀족 토지계급의 정치세력으로 출발했지만 수많은 역사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300년 넘도록 몰락하지 않았다. 그 긴 세월 동안 제3정당의 지위로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에서 그 이유로 보수당의 실용성과 적응력을 꼽았다.

경쟁정당이 집권해 자신들이 원치 않는 급격한 변화를 이끄는 것을 원치 않았던 보수당의 현실적 권력의지가 사회적 변화에 대해 유연함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 하기보다 영리하게 양보할 것은 양보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이 뿌리째 위협받지 않도록 했다는 것.

지금 한국의 보수에 필요한 건 유권자를 설득할 일대 변신이다. 철저히 자신의 이익과 기득권을 지키는 수구(守舊)가 아니라 낡은 것을 새롭게 보충해 닦는다는 보수(補修)다. 지난 10년간 대선에서 패한 진보에 필요했던 것이 이념이 아니라 민생과 실용이었듯이.

일찍이 고 리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두 진영의 적개심은 극에 달해 있다.
1945년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된 이후 국내 여론이 찬탁과 반탁으로 갈려 대립하고, 이게 분단으로 이어졌던 해방공간의 갈등을 재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담화문을 통해 앞으로 있을 헌재 판결과 관련해 어떤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모든 정치권의 승복을 거듭 요청했다.


승리한 쪽이 패배한 쪽의 자존심과 애국심을 어루만지고 감싸안아야 양 날개의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

seokjang@fnnews.com 조석장 정치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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