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국내 벤처 '이플'은 어떻게 '애플' 이겼을까

최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02 19:26

수정 2017.03.03 08:47

명함관리 프로그램 이플 만든 스마트비투엠 송은숙 대표
"애플이 국내 대형 로펌 통해 상표 모방했다며 이의신청"
KAIST AIP 과정 듣는 변리사.교수등이 발벗고 도와
ee는 '애'로 발음 안하는 미국인들 특징 증거로 대
특허청, 애플 이의신청 기각
국내 벤처 '이플'은 어떻게 '애플' 이겼을까


송은숙 스마트비투엠 대표( 사진)는 지난 2015년에 명함관리 프로그램인 '이플(eepple)'을 출시했다. 여성의 섬세함에 지인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담은 명품 명함관리 프로그램이다. 중소기업 사장이나 임원들은 한두 번 설명을 들으면, '우리 회사에게 꼭 필요하다'고 할 만큼 사람들이 원하는 기능을 많이 담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제 막 영업하려는 순간, 국내 최고.최대의 로펌인 김앤장이 특허청에 '이플이 애플(Apple) 상표를 모방했다'고 상표등록 이의신청을 제기한 것. 한마디로 '이플'이란 상표를 등록해줘서는 안 된다고 나선 것이다.

2일 송 대표는 "신생 벤처기업에게 절대 강자인 애플이 국내 대형로펌을 통해 소송을 걸어오자 '상표를 바꾸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이때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반전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애플 '상표등록 취소하라'에 승소…AIP 역할 커

우리나라의 산업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려면 중소기업이 지식재산의 보호와 활용 및 분쟁에 대한 실력을 키워야 한다.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은 지식재산의 중요성을 국회의원과 공무원 및 중소기업에게 알리는 다양한 강좌를 개설했다.

이 중 하나인 'KAIST 지식재산전략 최고위과정(AIP)'의 박진하 운영위원이 송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플'은 '애플'의 상표를 침해하지 않았으니, 물러서지 말고 소송으로 맞서자고 설득했다.

이기면 좋은 소송, 지면 더 좋은 소송이라고 조언했다. "이기면 '세계 최강 애플'을 꺾었다고 할 것이요, 지면 '세계 최강 애플'이 두려워한 회사로 이름이 난다."고.

결국 송 대표는 지식재산전략 최고위과정 1기로 등록하고, 대전에서 서울로 수요일마다 공부하러 갔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이플-애플 상표분쟁이 사례로 등장했다. 8명으로 나뉘어 진행된 분임 토의에서 사정 이야기를 들은 수강 동기생들이 너도나도 내 일처럼 달려들었다. 변리사, 변호사, 특허전문교수, 기업인 등은 이플이 애플의 상표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와 논리를 찾아냈다.

이상지 카이스트 교수는 "미국인들은 ee를 '이' 발음하지 '애'로 발음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Eeny, meeny, miny, moe (이니 미니 마이니 모)'라는 노래에서 찾아냈다. 영어권 나라에서 어린이들이 놀이에서 편을 가르거나 술래를 정하기 위해 쓰는 노래나 구호다. 미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이 익숙한 노래에서 ee는 절대 '애'로 발음하지 않는다.

애플을 대신해서 상표분쟁을 일으킨 김앤장은 '이플'이 '애플'로 발음을 혼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특허청은 7개월 넘게 고민하다가, 애플의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결국 송 대표는 분쟁에서 이겼다.

■평범한 초등 교사에서 기업가로 변신

송 대표는 2002년만 해도 초등학교 교사였고, 세 딸의 엄마였고, 학교하고 집 밖에 모르는 40대 초반의 평범한 여성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붙이자면 코스닥 상장을 앞 둔 벤처기업 대표의 부인이었다.

그의 남편 이인동 한국인식기술 사장은 컴퓨터가 문자를 인식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전문가였다. 그런데 주식공모로 수 백 억원의 자금을 모으기 불과 한 달 전인 2002년 11월 남편은 거짓말같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송 대표는 하는 수 없이 교직을 떠나 남편 회사로 들어와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15년간 예상하지 못한 고난과 시험의 시간이었다. 제품이 잠깐 팔리는가 싶더니, 상속세라는 장애물, 총무과장의 배신, 기업회생에 이은 기업 파산 등 송 씨에겐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리고 50대 중반 접어들면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려던 찰나에 남편의 직장 선배인 박병선 박사의 배려로 진짜 좋은 명함관리프로그램을 내 놓았다. 그 싹을 밟아버리려는 애플에 이플은 꺾이지 않고 살아났다.


송 대표는 "명함관리 프로그램인 '이플'은 중소기업들이 영업을 할 때 매우 효율적인 제품"이라며 "중소기업 CEO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yutoo@fnnews.com 최영희 중소기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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