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관행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06 17:15

수정 2017.03.06 22:35

[기자수첩] 관행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 협회의 상근부회장은 본인이 추진한 사업 때문에 업계에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고위 공무원 출신인 그는 수천억원 규모의 공익재단 설립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에 제대로 묻지도 않고 재단 설립을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반해 "담합 논란 때문에 비판을 받던 업체들에 이미지 회복의 기회를 준 것"이라는 옹호론도 제기됐다.

최근 협회장이 바뀐 또 다른 협회는 올해 목표를 '관련부처 고위 공무원'을 상근부회장으로 모시는 것으로 삼고 있다. 이 협회는 그동안 전관 출신 상근부회장이 없어 대관 역량이나 협회의 영향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 출신이 오면 당국과의 대화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겠나"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관가와 기업계에서는 당연시되는 관행(慣行)이 하나 있다.

기업들을 대변하는 협회의 '상근부회장'이라는 직책에 관한 관행이다. 협회의 안살림을 총괄하는 상근부회장은 대개 관련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맡게 된다. 협회장과 이사 등 대부분의 임원진을 업체 대표들이 맡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경제4단체로 불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은 모두 관련부처 고위 공무원 출신이다.

이들은 협회의 행정을 총괄함은 물론 업계와 관련부처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게 된다. 정부 당국과 업계가 밀접하게 교류하고 관련산업 전문가인 고위 공무원이 전문성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상근부회장 관행의 장점이다. 그러나 몇 해 전 '관피아.전관예우' 논란부터 최근 '정경유착' 논란까지, 시간이 흐르며 이런 관행을 더 이상 국민이 곱게 보지 않을 시기가 된 것 같다. 당국과 업계의 연결고리인 상근부회장 자리는 '관경(官經) 유착'의 끈으로 보일 수 있다.


관행은 업계와 조직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당연시되지만 문제가 생겼을 경우 고치기도 쉽지가 않다. 이른바 '관행의 딜레마'.

최근 우리나라는 사회 각 분야에서 그동안 쌓여온 문제들이 표면화되며 거의 모든 부문에서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편하고 익숙한 관행과 조금씩 멀어지는 것이 개혁의 첫 단추가 아닐까. 관행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개혁의 첫발을 뗄 시점이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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