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방폐장·좀비기업 공약은 왜 없나

적폐청산, 국가개조는 뜬구름.. 돈 나눠주는 복지공약은 가짜
고통 따르는 진짜 공약 내놔야

펄쩍 뛰겠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닮은 구석이 있다. 두 사람이 쓰는 용어를 보자. ①"적폐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도 한스럽다" ②"국가대개조 수준으로 기초부터 다시 세우겠다" ③"국가 대청소를 통해 국가 대개조의 길로 가야 한다" ④"적폐청산이 우리 국민이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지상과제다."

눈썰미가 남다른 독자는 금세 알아챘을 거다. ①과 ②는 3년 전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③과 ④는 탄핵 정국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한 말이다. 적폐니 국가대개조니 하는 말이 똑같다.

두 분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거대 담론을 믿지 않는다. 마치 빵빵한 스낵처럼 포장만 그럴 듯 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낵은 봉지를 터뜨려 봐야 한다. 세월호 이후 과연 대한민국은 얼마나 '개조'됐을까. 개조는커녕 되레 뒷걸음질쳤다. 개조가 됐으면 대통령 탄핵을 놓고 이처럼 온 나라가 시끄러울 리가 없다.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 글을 쓰는 소준섭 박사는 "'국가대개조'라는 용어는 자연스럽게 일제 강점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한다. 일본 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것이다. 소 박사는 "'적폐'와 '국가 개조'는 '박근혜표' 용어다 … 우리의 기억은 너무 쉽게 망각된다"고 탄식한다. 문재인 전 대표가 적폐.개조란 말을 쓰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내 귀엔 영 거슬린다.

나는 모든 대선주자들이 말잔치 대신 알맹이 있는 공약을 내놓길 바란다. 예산으로 공공 일자리 만든다는 공약은 공약이 아니다. 그건 철부지도 할 수 있다. 기본소득제 같은 복지 공약은 가짜 공약이다. 진짜 공약엔 고통이 따른다. 가계부채.방폐장.좀비기업 공약이 진짜 공약이다.

가계빚은 작년말 1300조원을 넘었다. 박근혜정부 때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하지만 그 덕에 건설경기가 꿈틀거리면서 성장률이 2~3%대를 유지했다. 가계빚 난제를 풀 문재인식 해법은 뭔가. 성장률이 떨어지는 걸 감수하고 가계빚을 잡을 텐가, 아니면 지금처럼 성장을 위해 가계빚을 모른 척 할 텐가.

장기적으로 원전을 없애는 데는 나도 찬성이다. 하지만 새 원전은 짓지 않더라도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은 빨리 지어야 한다. 그래야 사용후핵연료 같은 고준위 폐기물을 영구 저장할 수 있다. 원전을 돌린 지 40년이 됐다. 그 덕에 전기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썼지만 이제 쓰레기를 치울 때가 됐다. 노무현정부 때 부안사태(2003년)가 터졌다. 장갑.옷.그릇을 저장하는 저준위 방폐장 부지를 고르는 데도 민란에 가까운 홍역을 치렀다. 고준위 처리장은 말도 붙이기 힘들다. 문 전 대표의 복안은 뭔가.

우리 경제가 도약하려면 부실기업을 털고 가는 게 맞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 사례에서 보듯 정치인들은 오로지 표만 본다. 최근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로 몰려가 앞다퉈 지원을 약속했다. 문 전 대표도 그 중 한 명이다. 언제까지 부실기업들을 상전 모시듯 이고 갈 텐가.

일본풍 국가대개조 같은 말은 접어라. 누가 나서서 나라를 개조하던 시대는 지났다.
달콤한 복지공약도 집어치워라. 대신 가계빚.방폐장.좀비기업 해법을 내놔라. 칙칙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왜 문재인만 들볶느냐고? 지금으로선 그가 차기 대통령이 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선두 후보에게 그 답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