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의 소비자경제]

정부 주도 성장신화의 족쇄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성장은 소비자 친화적인 것이 아니다. 일단 기업을 키우고 여력이 생겨야 비로소 소비자를 배려할 수 있는 것으로, 그래서 소비자 보호나 권익증진 하면 기업에 부담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까지 경제정책의 틀은 대체로 소비자 보호는 기업 이익이나 경제성장과 상충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으며, 아직도 다수 정치가나 관료, 경제인들 나아가 시민운동가들조차 소비자 권익 증진은 기업에 부담이 되고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근거 없는 신념의 일반화는 박정희 성장 신화가 가져온 부작용이기도 하다. 예컨대 1960~70년대 경제성장 과정에서는 미처 소비자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1980년대 들어서 어느 정도 기본적 수요가 충족된 뒤에야 소비자 권익 보호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소비자보호법 등의 입법도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정희시대 경제성장이 소비자에게 희생을 강요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성장이 촉진됐다고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시장금리에 비해 낮았던 은행 이자율과 기업대출 특혜(가계대출은 고리 사금융시장 방치), 원화 고평가와 수입제한 및 수출지원제도(국내외 가격차로 인한 소비자 부담 증가)와 소비자 권리에 대한 무관심은 과거 성장정책의 한 측면이지만 결과적으로 197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기록했다고 해서 소비자 희생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그것은 마치 최근 중국의 수출이 급속히 성장한 이면에 소비자피해 불량상품이 많았고, 그 덕에 성장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중국은 연간 약 1조달러의 소비재를 수출하는데 중국제는 부실하다는 이미지로 인해 어림잡아 실제 품질 대비 20%쯤 디스카운트된다면 연간 2000억달러(220조원 이상)의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러니 부실한 소비자 보호로 가장 손해 보는 것은 중국 자신이다.

아이러니는 박정희시대에서 벗어나자고 외치는 사람들까지 과거의 틀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고 대기업을 규제하거나 중소기업을 지원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났음에도 정책은 그대로이다. 더구나 1960~70년대의 성장도 역설적으로 희생자인 소비자들(가계)의 노력에 기인한 것이었다.
가난에도 불구하고 높았던 가계저축률, 미래 희망을 본 교육열, 애국적 국산품 사용 등등. 박정희 대통령이 성장신화에서 소비자들의 공을 가로챈 건지 몰라도 어쩌면 소비자들의 힘을 이용한 것은 아닐까.

소비자들이 중소기업 상품을 써도 안심할 수 있게 소비자 보호를 잘하면 중소 브랜드도 경쟁력을 갖게 되며, 갑을 관계 폐해나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 거부감도 줄어든다. 전통시장을 소비자들이 편히 즐기는 쇼핑문화 공간으로 리뉴얼할 수 있게 건축 규제 빗장을 풀고 소비자 니즈에 맞춰 복지를 늘려나가면 일자리는 시장이 만들고 경제도 성장한다. 정부라는 슈퍼컴퓨터보다 소비자들의 클라우드컴퓨팅을 활용해 답을 구하는 것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yisg@fnnews.com 이성구 fn소비자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