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위대한 승복'을 선택하자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두 번 갈림길에 섰다. 2000년 대선이 첫 번째 기로였다. 개표 당시 고어는 전국투표에서 부시를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에서는 266대 271로 뒤져 있었다. 25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플로리다주에서 결과가 달라진다면 역전이 가능한 상황. 하지만 주 법원이 허용한 재검표 절차를 연방대법원이 중지시켰다. 누가 보아도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9명 중 공화당 성향의 대법관이 5명으로 우세했기 때문이다. 일촉즉발의 순간, 고어는 법원의 결정에 승복했다. 고어 자신의 말처럼 '대법원 판결에 동의할 수 없지만' 결과를 받아들인 것이다. '개인적 성공보다 미국과 민주주의를 위한' 어려운 선택이었다. 만약 고어가 불복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격화되던 시위에 기름을 끼얹어 내전 상태에 이를 수도 있었다. 총기 소유가 일반화된 미국에서 상상만 해도 끔찍한 노릇이다.

2004년 선거를 앞두고 고어는 또 한번 고비를 맞는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선거가 아닌 법원에 의해 당선되었다며 백악관 거주자(Resident)라는 조롱이 기승을 부리던 상황이었다. 대통령을 뜻하는 프레지던트(President)에서 'P'자를 뺀 것이다. 고어가 출마하면 당선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고어는 불출마를 선택한다. 자신이 나설 경우 미국의 미래를 두고 경쟁해야 할 대통령선거가 과거 논쟁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보통 사람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지구환경 문제 전도사로 변신한 고어는 활발한 강연과 저술활동으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두 번의 기로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가 지금처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승복은 이처럼 적극적인 선택의 결과물이다. 불복과 승복의 갈림길에서 승복이라는 주체적인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고어는 연방대법원의 결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수동적인 자세를 보인 게 아니었다. 미국과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 최선의 길을 택한 것이다. 누군가의 언급처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은 노예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노예는 선택권이 없다. 노예가 주인의 결정에 따르는 것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굴종 혹은 복종의 결과일 뿐이다. 대통령 탄핵 인용이라는 초유의 결론을 내린 헌재의 결정에 대한 승복은 따라서 자발적인 우리의 선택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비록 헌재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 해도 대한민국과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이제는 더 큰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처한 엄중한 국면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국가의 안보와 경제의 근간이 모두 흔들리는 총체적인 위기상황이다.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을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은 오바마 정부 당시와 사뭇 다르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반발은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마를 우리에게 안기고 있다. 안보를 우선하자니 경제가 흔들리고, 경제를 먼저 고려하면 안보가 어려워지는 최악의 숙제인 셈이다. 한 발만 삐끗할 경우 한반도의 화약고가 폭발할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형편에 처해 있다. 이렇게 위중한 상황에서 우리는 거의 100일 동안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왔다.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도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를 앞에 놓은 채 대통령 탄핵을 두고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론분열의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정치지도자들이 지금까지 보인 행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광장과 아스팔트의 세력에 편승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그 누구도 헌재 결정에 반발하는 민심을 다독일 수 없는 이유이다.

이제 믿을 건 우리 국민의 저력밖에 없다. 그동안 이른바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대규모 군중집회가 있었지만 큰 불상사가 없었던 것은 좋은 신호라고 생각한다. 무기력하게 헌재의 결정을 기다린 것이 아니고 충분한 의사표시를 했다는 점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헌재의 결정에도 두 가지 상반된 민심에 대한 고려가 모두 담겨 있다고 본다. 이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승복을 선택해야 한다. 역사는 우리 국민의 결정이 고어의 선택처럼 '위대한 승복'이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