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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국민통합' 정치권이 나서야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10 17:05

수정 2017.03.10 17:05

[여의도에서] '국민통합' 정치권이 나서야

박근혜 대통령이 전(前) 대통령이 됐다. 헌법재판소는 10일 재판관 8명의 전원일치로 박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국회의 지난해 12월 탄핵이 '정치적 탄핵'이었다면 이날 헌재의 결정은 '사법적 탄핵'이다. 헌재는 대통령 직권남용을 명확히 규정했고,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박 전 대통령이 적극 개입했음을 인정했다.

정치권은 당장 조기대선 국면에 돌입했다. 사법적 탄핵 결정으로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4년간의 공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탄핵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영원히 달게 됐다.

문제는 탄핵 결정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데 있다. 야당은 벌써부터 조기대선 정국에 탄핵 인용을 적극 활용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부 보수층에선 '헌재의 사법적 탄핵 결정을 탄핵해야 한다'면서 불복 입장을 밝혔다. 일부 여당 의원들 사이에선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탄핵을 보수층 결집의 동기부여 계기로 삼아야 한다면서 선동에 나섰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헌재의 사법적 결정이 오히려 국론분열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제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국론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야 할 책무가 정치권에 있다. 당장 정권교체에 눈이 멀어 탄핵정국을 선거전략으로 동원해선 안 된다. 이날 박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자 일부 야당에서 박수와 환호를 동반한 축포의 세리머니를 했는데 걱정이다. 내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국가의 원수이자, 국정수반으로서 국정을 이끌었던 데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생각해서 자축 세리머니는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공과는 앞으로 전개될 검찰의 추가 수사에 맡겨두자. 추상같은 사법적 잣대로 잘못을 가려내 법의 심판대에 세우면 되는 일이다.

경제불황, 안보불안, 국정불안 등 녹록지 않는 대내외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우리끼리 총질하는 것은 최대한 삼가야 한다. 여당은 박 대통령 파면에 석고대죄해야 하고, 야당은 새로운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여야를 떠나 국민통합과 갈등 치유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탄핵까지 이르게 된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삼권분립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고, 국정감시의 책무를 게을리했다. 박 전 대통령을 배출했던 여당이야 그렇다치고, 야당이야말로 자축할 일이 아니다. 살아있는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 무능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식으로 정권교체만 외쳐선 안 된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거울 삼아 신발 끈을 고쳐매고 오로지 국민화합과 통합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적폐 청산도 필요하지만, 국민통합과 갈등 치유가 우선이다.

여당은 분열과 대립을 막기 위해서라도 보수층 결집이라는 선거전략으로 포장된 선동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야당도 적폐 청산이라는 허울 아래 정권교체만 주장해선 안 된다. 탄핵정국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된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감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과 비전이다.

여야 대선주자들도 표(票)만 생각하는 선동정치를 주도하기보다는 국민화합과 국론분열 봉합의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주자들은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 배출이 언제든지 본인에게 해당될 수 있다는 '겁'을 먹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날 탄핵선고가 5월에 새롭게 탄생할 새 대통령에게 주는 정치적 함의는 크다.
권력남용의 잣대와 기준이 더욱 엄격해진 만큼 새 대통령이 갖는 국정운영의 부담도 비례한다. 주자들은 대한민국의 불행인 대통령 탄핵을 뒤로하고, 어떻게 하면 난파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호(號)를 구할 수 있을까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오늘따라 전화위복(轉禍爲福.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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