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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클릭] 한은의 가계대출 통계 오류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14 17:29

수정 2017.03.14 17:29

[현장클릭] 한은의 가계대출 통계 오류

광복 후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국가통계 정립이었다. 통계는 한 나라의 경제를 파악하고 경제정책을 펴나가는 기본 중 기본이어서다.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은 '생산→분배→지출'이라는 국가경제의 한 축인 지출국민소득 통계를 생산했다. 한은은 1958년부터 우리나라 국민소득 통계를 만드는 국내 유일의 공식 편제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통계의 꽃'으로 불리는 국내총생산(GDP)을 포함한 경제통계 대부분이 한은 손을 거쳐 탄생했다. 통계청과 더불어 국가통계 생산의 양대 축인 한은의 자부심은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신뢰성이 뒷받침됐기에 빛을 발했다.


그런 한은의 자부심에 흠집을 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9일 한은은 올해 1월 저축은행 가계대출이 9775억원 늘었다고 발표했다. 1조원에 육박하는 증가 폭에 '풍선효과'를 우려하는 기사가 쏟아진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발표 후 4시간이 지나서야 한은은 실제 증가액이 5083억원으로 집계됐다며 부랴부랴 수정을 요청했다. 저축은행중앙회가 그간 영리성자금으로 분류해 가계대출에서 제외했던 기타 대출을 이번 통계부터 포함시켰지만 한은 경제통계국은 이런 내용을 파악하지 못해 각주조차 달지 않았다. 직원과 팀장 간 보고체계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수정 발표가 나오기까지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그사이 금융시장에는 혼란이 초래됐다. 한은이 지나치게 안이하게 대처한 것 아니냐는 지적 역시 필연적 결과였다. 한은 출신 한 인사는 "통계 오류를 잡아내는 체계를 겹겹이 갖추고 있는데도 한은이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하는 관행이 있는 한은이 새로 바뀐 통계 산출방식을 적용하는 걸 소홀히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금융통계부장을 교체하고 팀장을 직위해제하는 문책성 징계를 전격 내렸다. 경제통계국장과 담당과장에게도 엄중 경고했다. 한은 내 징계기록이 남아있는 2000년 이래 통계 오류로 직위해제까지 당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은 직원들도 예상을 뛰어넘는 고강도 징계에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만큼 이주열 한은 총재가 이번 사태를 한은 통계의 신뢰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중대 사건으로 인식했다는 의미다. 실제 이 총재는 전날 임원회의에서 관련 통계 작성을 담당한 관계자들을 수차례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태는 전형적 '인재(人災)'다.
그러나 가계부채 문제가 최근 국내 경제의 최대 현안임을 감안할 때 실수의 대가는 컸다. 금융권 전반에 가계대출 통계가 잘못 산출되고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낳게 되면 통계의 신뢰성은 한순간에 추락한다.
입맛대로 달라지는 통계를 누가 신뢰할 수 있겠나. 한은이 국가통계기관이라는 영향력과 지위에 취해 통계의 기본인 신뢰성을 등한시한 건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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