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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역사적 관점에서 본 '中 사드보복'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20 17:15

수정 2017.03.20 22:12

[차장칼럼] 역사적 관점에서 본 '中 사드보복'

1259년 고려의 대몽항쟁은 양국 간 화의조약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문서상 화해이고 실제는 고려의 항복 선언이다. 요구조건 영순위는 무장해제였다. 함선 30척을 불태우고, 300년 넘게 공들여 쌓아올린 전국의 주요 산성을 모두 헐게 했다. 병력은 허용 범위 내에서 최소한만 유지했고 군사상황은 원나라에 일일이 보고되고 통제를 받았다. 심지어 삼별초 반란을 진압한 고려의 총사령관 김방경이 갑옷과 창 등 무기를 간직했다는 이유로 고문까지 당했다.
대제국 원나라에 맞서 29년간 끈질기게 저항한 고려가 재무장하지 못하게 철저히 싹을 잘라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고려의 군비는 재정비되지 못하고 원나라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이는 16세기 후반 일본의 전국시대까지 잦은 왜구 침입을 초래하는 단초가 됐다. 또한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명의 파병, 병자호란 등 국력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로켓추진 장거리 화약무기 '신기전' 등 신무기 개발로 자주국방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청나라의 극심한 내정간섭으로 조선의 적극적인 화기개발과 도입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 중국의 사드 몽니는 역사적으로 원.청나라 시대와 오버랩된다. 일각에서 중국이 우리나라를 청왕조에 조공하던 조선왕조로 바라본다고 일갈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중 사드 갈등의 쟁점인 X-밴드 레이더망이 미국 본토 방어 지원용으로 일본에 배치될 땐 가만히 있더니 유독 우리나라만 걸고 넘어져 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과거와 다른 게 있다면 역학구도의 핵심수단이 직접적인 무력행사에서 우회적인 경제보복으로 바뀐 거다. 사드의 실효성은 차치하고, 한국 정부의 자위적 안보 조치를 중국이 압박하는 것은 주권침해다. 더구나 민간기업을 상대로 자행되는 노골적이고 전면적인 보복행태는 반중 감정까지 야기하고 있다. 국제 통상질서에도 역행된다. 중국은 해외기업 차별금지 등을 약속하며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중국 고도성장의 동력이 됐고, 세계교역 비중 9.1%의 경제대국으로 변모하는 전환점이 됐다. 그 사이 한국의 중국 수출 비중은 25%까지 높아졌다. 이를 사드 배치 번복을 위한 무기로 삼는 것은 양국 수출 타격과 중국 투자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등 한.중 모두 독이 될 뿐이다. 사드 보복은 한국 기업들도 변화시키고 있다. 요즘 재계의 화두는 다변화다. 중장기적으로 수출지역 다변화로 대중 수출의존도를 낮추려는 것. 향후 한국의 대중 수출비중이 낮아지고 수출지역이 다양화되면 사드 보복 덕분(?)이다. 중국에서는 사드를 줄여서 '薩德'이라고 부른다.
한자로 보살 살, 큰 덕이다. 보살까진 아니더라도 대국다운 품행을 보고 싶다.
후대에 작금의 상황이 원.청.중국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내정간섭으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말이다.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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