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기자수첩]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27 14:50

수정 2017.03.27 14:50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강태공으로 더 유명한 중국 은나라 시대 여상의 아내는 여상이 집안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을 나간다. 이후 여상이 주 문왕과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하고 제나라의 제후가 돼 돌아오자 아내가 다시 함께 살자며 돌아왔다. 이에 여상은 그릇의 물을 땅에 부은 뒤 다시 담아보라고 한뒤 "엎지른 물은 용기에 다시 담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회계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대우조선해양 회계사기에 대한 딜로이트 안진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가 결국 12개월간 신규 감사계약 업무정지로 결정났다.

제재 수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징계가 결정된 만큼 이를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1심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난다는 등 변수에 따라 행정소송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나중의 문제다.

이번 제재로 딜로이트 안진은 물론 회계산업 전체에 대한 신뢰도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수주산업 회계절벽 등 이슈로 감사인의 책임 및 처벌 강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던 회계업계는 업계를 대표하는 빅4 회계법인이 회계사기에 연루돼 중징계를 받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할말이 없게 됐다. 회계투명성 제고라는 외침은 공염불이 된 셈이다.

무엇보다 후폭풍도 우려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4월 감사 대란 가능성이 어느 때 보다 높다. 빅4 회계법인에서는 규모가 큰 대형사들과 외부감사 계약을 맺고 있는 딜로이트 안진 파트너 영입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딜로이트 안진과 감사계약을 맺고 있던 기업들은 짧은 시간에 새로운 회계법인을 물색하고 재계약에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감사계약을 따내기 위해 자칫 이전투구가 벌어지게 된다면 이는 회계산업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악재가 될 수 있다.

특히 금융당국이 이번 대우조선 회계사기에 대해 회계법인이 '묵인' 혹은 '방조'했다고 판단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비슷한 회계사기가 발생할 경우 회계법인에 중징계를 내리는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무지 개선될 기미가 없는 감사인과 기업간 갑을관계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회계사기 발생시 회계법인이 중징계를 피하기가 사실상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만난 회계업계의 고위 관계자는 "기업과 회계사간 관계가 변화가 없는데 이번 징계를 계기로 사실상 모든 회계법인이 징계 리스크에 노출된 셈"이라면서 "일단 제대로 감사를 할 수 있는 토양부터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미 물은 엎어졌다. 다시 담을 수 없는 물을 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새로운 물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회계업계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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