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27 17:12

수정 2017.03.27 17:20

[기자수첩]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강태공으로 더 유명한 중국 은나라 시대 여상의 아내는 여상이 집안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을 나간다. 이후 여상이 주 문왕과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하고 제나라의 제후가 돼 돌아오자 아내가 다시 함께 살자며 돌아왔다. 이에 여상은 그릇의 물을 땅에 부은 뒤 다시 담아보라고 한뒤 "엎지른 물은 용기에 다시 담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회계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대우조선해양 회계사기에 대한 딜로이트 안진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가 결국 12개월간 신규 감사계약 업무정지로 결정났다. 제재 수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징계가 결정된 만큼 이를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1심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난다는 등 변수에 따라 행정소송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나중의 문제다.

이번 제재로 딜로이트 안진은 물론 회계산업 전체에 대한 신뢰도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수주산업 회계절벽 등 이슈로 감사인의 책임 및 처벌 강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던 회계업계는 업계를 대표하는 빅4 회계법인이 회계사기에 연루돼 중징계를 받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회계 투명성 제고라는 외침은 공염불이 된 셈이다.

무엇보다 후폭풍도 우려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4월 감사 대란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빅4 회계법인에서는 규모가 큰 대형사들과 외부감사 계약을 맺고 있는 딜로이트 안진 파트너 영입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딜로이트 안진과 감사계약을 맺고 있던 기업들은 짧은 시간에 새로운 회계법인을 물색하고 계약에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감사계약을 따내기 위해 자칫 이전투구가 벌어지게 된다면 이는 회계산업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악재가 될 수 있다.

특히 금융당국이 이번 대우조선 회계사기에 대해 회계법인이 '묵인' 혹은 '방조'했다고 판단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비슷한 회계사기가 발생할 경우 회계법인에 중징계를 내리는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무지 개선될 기미가 없는 감사인과 기업 간 갑을관계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회계사기 발생 시 회계법인이 중징계를 피하기가 사실상 힘들다는 것이다.


이미 물은 엎어졌다. 다시 담을 수 없는 물을 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새로운 물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회계업계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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