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재훈 칼럼] 근로시간 단축 '깜짝쇼'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29 17:11

수정 2017.03.29 17:11

국회 졸속처리 하려다 '삐걱'
선거 앞두고 밀어붙여선 안돼
기형적 임금체계부터 고쳐야
[이재훈 칼럼] 근로시간 단축 '깜짝쇼'

근로시간 단축을 놓고 국회가 벌였던 '깜짝쇼'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최근 주당 근로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해 대선 이후 다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휴일근로 수당 할증률 등 쟁점에 합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한 귀결이다. 난제 중 난제인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졸속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국회는 연내 입법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크게 반발했던 기업들과 숨죽이며 처리를 지켜봤던 노동계 모두가 앞으로도 전전긍긍하게 됐다. 국회는 즉시 52시간 초과근무를 금지하면 삶의 질이 향상되고 고용도 늘 것이라고 하는데 순진한 발상이다. 우리 사회가 이것을 제대로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기업은 비용 부담과 인력난으로 인한 생산차질에, 근로자는 임금삭감에 휘청거릴 수 있다. 연착륙 방안 없이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면 왜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두번째로 많은 시간을 일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강성노조로 유명한 현대자동차를 보자. 연봉 1억원을 받는 현대차 생산직 노조원의 경우 본봉이 5000만원, 수당.성과급 등이 3000만원, 특근수당이 2000만원 내외다. 현대차를 분석한 책 '가보지 않은 길'을 쓴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회사 측이 잔업과 특근을 많이 시키려고 이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근로자들도 웃돈을 듬뿍 얹어주는 야근.주말특근을 선호했다. 많은 제조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초과근무로 생계를 유지하는 실정이다. 배보다 배꼽이 큰 기형적 임금체계를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

고용 유연성이 떨어지는 우리나라 상황 탓에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은 정규직 채용을 꺼린다. 일손이 모자라도 신규 고용을 않고 웬만하면 기존 직원의 근로시간을 늘려 대처한다. 연장근로에 대한 과도한 할증률도 장시간 근로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우리는 50% 또는 100% 할증을 얘기하고 있지만 국제노동기구(ILO)는 25%를 권고하고 있고 일본은 35%를 적용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은 연간 12조3000억원을, 그 중 중소기업은 8조60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근로자의 부담은 더 심각하다. 제조업 근로자의 평균 월급이 13.1%(노동연구원 분석)나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노동계도, 정치권도 임금삭감에 대해 선뜻 말하지 않는다. 근로시간 규제를 완충장치 없이 시행하면 기업은 고용 확대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자동화 시설을 늘리거나 해외생산기지 확충으로 눈을 돌리는 것, 그도 아니면 사업을 축소하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용 로봇 밀도는 세계 1위다.

근로시간 단축 문제는 노사가 합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점에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2015년 9.15 노사정 대타협안이다. 노사정위원회는 1년 가까운 논의 끝에 근로기준법 개정 방향에 합의했는데 △52시간 근로를 기업규모에 따라 4년간 1~4단계로 나눠 시행하고 △4년간 주 8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충격을 완화하는 노사정 합의안을 국회가 무시하는 까닭을 알 수가 없다. 혹시 이것도 '박근혜 정책 지우기(Anything But Park)'가 아닌지.

국회는 노사정 합의안을 기초로 단계적인 근로시간 단축안을 만들어야 한다.
정작 완충기간 동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OECD 회원국 꼴찌 수준의 낮은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미국이 한 시간에 생산하는 부가가치를 우리는 두 시간 걸리는 한심한 생산성을 두고서는 장시간 근로를 피할 방도가 없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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