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 걸음] 5G, 인프라보다 서비스를 만들어라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29 17:12

수정 2017.03.29 22:36

[이구순의 느린 걸음] 5G, 인프라보다 서비스를 만들어라

학교 때 어울려 다니던 친구 몇과 오랜만에 만났다. 만난 지 채 30분도 안돼 자연스럽게 넷플릭스가 화제에 오른다. 새 드라마 '마블 아이언 피스트' 출연자들이 한국에 왔다고 하고, 어떤 미드가 재미있다고도 하고, 곧 한국 영화 '옥자'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고 자기들끼리 왁자지껄한다.

한동안 듣다가 물었다. "KT나 SK텔레콤에서 하는 동영상 서비스도 있는데, 넷플릭스가 더 좋니?" 쏘는 듯 돌아온 대답은 "야, 집에서도 안 보는 지상파 프로그램 똑같이 틀어주는 걸 뭣하러 스마트폰으로 또 보냐?"다.

주변에 넷플릭스를 본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볼만한 콘텐츠를 편하게 보기에 넷플릭스가 제격이란다.

지난해 초 넷플릭스 관계자가 했던 말이 있다. 한국은 넷플릭스 사업을 위한 최적의 환경이란다. 애초에 스트리밍 방식으로 동영상을 제공하는 넷플릭스에는 빠른 인터넷 속도가 가장 중요한 사업기반인데, 한국이 최고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의 훌륭한 인프라 덕에 넷플릭스는 한국 서비스 시작 1년 만에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미디어가 됐다. 그런데 그사이 정작 훌륭한 인프라를 만든 KT와 SK텔레콤의 서비스는 갈수록 외면받는 서비스가 됐다.

정부와 통신회사들이 5세대(5G) 이동통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세계 표준이 결정되기도 전에 상용서비스를 하겠다고 고삐를 죄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는 투자를 시작할 태세다.

5G는 무선인터넷 속도가 현재 사용 중인 4세대(4G) 롱텀에볼루션(LTE) 보다 250배나 빠르다. 현재 4분 정도 걸려야 내려받을 수 있는 영화를 5G에서는 1초에 내려받을 수 있고, 자율주행차들도 실시간 수많은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빠른 무선인터넷을 만든 우리 통신회사들은 무엇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계속 투자할 밑천은 마련될까. 어떤 기업이 빠른 무선인터넷의 혜택을 받을까.

지금 정부와 통신사업자가 세계 최초 5G 상용화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이 대목이 아닐까 싶다.
통신회사당 5조원 가까이 들여 세계 최초 5G 상용서비스를 시작한다고 치자. 넷플릭스가 한국 통신회사에 통신망 사용료를 낼 리 없지 않는가. BMW나 테슬라가 자율주행차를 팔면서 5G 사용료를 받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2세대(2G), 3세대(3G) 시절에나 하던 '세계 최초 상용화' 경쟁보다 5G 통신망을 이용하면서 소비자가 즐거운 마음으로 지갑을 열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경쟁을 했으면 한다.


5000만 국민들이 매월 내는 통신비로 5G 투자를 하면서, 정작 우리 통신회사들은 껍데기만 남는 세계 최초 경쟁은 더 이상 안 했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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