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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여론조종자들

조석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03 17:19

수정 2017.04.03 22:20

[윤중로] 여론조종자들

우리나라 여성 흡연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흡연 시작 연령이 2007년 평균 25.4세에서 2012년 평균 23.6세로 낮아졌다. 여성 흡연의 증가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또 담배는 기호품이니 여성 흡연에 대해 시비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여성 흡연의 확산 배경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시작된 선전책략술(프로파간다)이 작용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남성 흡연율이 폭등하자 담배회사들은 여성 흡연 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담배회사 아메리칸타바코는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친조카이자 'PR의 아버지'로 불린 에드워드 버네이즈(1891∼1995)를 고용해 여성들을 공략했다. 버네이즈는 담배를 자유를 추구하며 관습을 깨트린 대담하고 매력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둔갑시켰다.

버네이즈의 전략은 구매자들에게 지금 당장 담배를 사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었다. 구매자들의 인식을 통째로 바꿔 판매자가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는 느낌이 전혀 없이 그 제품을 탐내도록 만드는 데 있었다. 버네이즈는 상품에 대한 욕망을 은밀하게 인간의 성적인 욕망으로 환기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여성의 마른 몸매를 치켜세우게 만들었다. 살빼기 유행에 관한 자료와 날씬한 여성 모델의 사진들이 신문과 잡지 지면에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하고 난 후에는 담배가 살을 빼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구강살균과 신경안정에 효과가 있다고 선전했다. 심지어 구운 담배라서 자극적이지 않고 기침도 나지 않는다고 광고했다.

버네이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담배가 사람들의 식습관에 깊숙이 스며들기를 원했다. 대중매체를 통해 식사가 끝나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워야 품격 있는 식사가 마무리된 것처럼 유명인들을 활용했다. 당시 호텔 디저트 목록에도 담배가 포함됐고, 부엌선반을 만들 때 주부들을 위한 담배보관함을 만드는 것이 선망이 대상이 되게 했다. 이 같은 여론조작 활동으로 여성 흡연은 크게 대중화됐다.

여론조종자, 스핀닥터(spin doctor) 한 사람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사회 이슈와 트렌드를 이끌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일상의 어느 부분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거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들, 즉 여론조종자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일 나치의 선전선동가였던 괴벨스도 버네이즈의 저서 '프로파간다'를 자신의 서가에 항상 두고 지냈다고 한다.

제19대 대선이 한달가량 앞으로 다가왔다.
각 후보 진영의 수많은 가짜뉴스(fake news)들이 어지럽게 여론시장에 유포되고 있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남긴 많은 메시지들 속에 숨겨진 행간을 읽어내야 한다.
여론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통치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seokjang@fnnews.com 조석장 정치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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